- 50대 이상 인터넷 사용 익숙해지면서 현실사회 이념지형 그대로 투영…소셜 네트워크가 사회갈등 자극하는 장으로 변질
제도 정치권, 인터넷 여론 ‘괴담’ 으로만 치부
젊은층, 극단적 반발·혐오감에 히스테리 증상까지
가치관 같아야 팔로우…끼리끼리 문화 고착화
여론 완충지대 역할 못하고 갈등만 유발
“무상복지는 포퓰리즘이다. 기초노령연금, 노인 무임승차 없애자.” “민영화 공약한 박근혜 후보 지지한 지역부터 수도ㆍ전기 민영화 합시다. 아 몰라 민영화!”
18대 대통령 선거 직후 인터넷 포털 청원게시판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다. 대선 기간 무상 복지정책에 대해 50대 이상 세대가 중심된 보수층이 공격을 이어가고, 결과적으로 여당 후보가 승리했다. 그러자 “노년층이 젊은이들의 미래를 막았다”며 “더 이상 이들을 위한 복지 지출에 세금을 낼 수 없다”는 분위기가 급속히 퍼졌다. 어떤 상황도 민영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비꼬는 이른바 ‘민영화 놀이’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각종 사이트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사회통합의 꿈을 이룰, 든든한 연결고리인 줄 알았던 인터넷이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단절고리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괴담’과‘알바’사이=인터넷은 한때‘구원자’였다. 국가가 숨겨온 정보 등이 자유롭게 유 통되고 자유로운 개인이 의견을 서로 교환하면서, ‘집단 지성’을 통해 정치의 발전을 선도하고 사회적 평안을 이룩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넘쳤다. ‘인터넷 민주주의’‘디지털 공론장’과 같은 단어가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정치 변화의 동력이자 시민의 의사소통 창구’로 평가되던 인터넷에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기 시작한 것은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의심 국가인 미국의 쇠고기 수입을 결정하면서 시작된 촛불시위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시작과 함께 이어지자 정부는 인터넷을 ‘광우병 괴담’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이후 인천공항 민영화와 4대강 사업 등 정치적 논란이 심화될 때마다 인터넷에 유통되는 정보와 우려에 대해 정부는 ‘괴담’으로 치부했다. 정부가 개인을 상대로 인터넷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고발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도 나타났다.
제도권 정치가 인터넷 여론에 문을 걸어 잠그자, 정치적 반대자의 견해에 대한 극단적 혐오가 곳곳에서 히스테리적 증상을 보였다. 진보적 사이트에서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를 정부나 여당의 ‘알바’로 모는 현상이 나타났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디지털 본부와 2030 본부를 설치해 각각 1만명의 인터넷 전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발언하면서다. 대선 과정에선 ‘십알단’이란 용어도 등장했다.
새로운 소통의 창구라는 SNS도 예외는 아니었다. “뜻 모를 알파벳과 일련번호로 된 아이디나 프로필 사진이 달걀인 아이디는 알바”라는 등 알바 구별법까지 나올 정도였다. 보수를 대표하는 사이트에서도 상대방에 대해 ‘좌파 빨갱이’ ‘촛불 좀비’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공격에 나섰다.
▶소셜 컨플릭트, 사회의 거울=사회적 연결망으로 촉망받던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는 이제 사회적 갈등, 즉 ‘소셜 컨플릭트(Social Conflict)’의 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흔히 인터넷에서 갈등이 심화된 이유를 두고 2002년 대선에서 인터넷의 힘을 절실히 느낀 보수층이 자본과 권력을 동원해 하나씩 점령하고 여론을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추천 버튼을 ‘산업화’, 비추천 버튼을 ‘민주화’로 부르고 정치ㆍ사회적으로 극단적인 이념 성향을 드러내면서 주목받고 있는 ‘일간 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는 이런 여론 조작의 대표적인 결과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애당초 인터넷이 공론의 장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쉽게 조작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유석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터넷 미디어에서의 담론 역시 한국의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최근의 인터넷 보수화 현상과 그에 따른 보ㆍ혁 갈등은 인터넷 공간이 변질됐다기보다는 현실사회의 특징을 따라간다는 의미에서 ‘정상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즉, 그동안 기술적 문제로 온라인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던 보수층이 인터넷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현실 사회의 이념 지형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
대표적인 보수적 연령대로 꼽히는 50대 이상 세대층의 인터넷 이용률은 꾸준히 늘었다. 2001년 15% 가량에 머물렀던 50대의 인터넷 사용량은 60%에 육박한다. 한 자릿수에 그쳤던 6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도 20%를 돌파했다. 장ㆍ노년층의 인터넷 활용 역량도 2004년 국민전체 대비 17.7% 수준에서 2011년 42.8%까지 따라잡았다.
50대 이상이 인터넷 세계에 뛰어들면서 보수층 비중이 부쩍 늘었다. 2004년 전체 14.4%의 네티즌이 자신이 ‘보수’라고 답한 반면, 2012년엔 그 비중이 21.2%에 이르렀다.
때문에 SNS에서도 현실상의 사회갈등이 그대로 재현된다. 전문가들은 SNS는 사람관계를 무한히 확장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관계에 대한 정보가 과잉 공급되면 개인은 신뢰할 수 있는 상대를 중심으로 소통한다고 말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트위터 사용자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 가치관과 비슷한 사람’을 가장 많이 팔로어한다. 선택적 노출 효과(selective attention), 즉 유유상종의 마음이다. 유사한 사람이 모인 집단이 가지는 배척성과 집단 간 경쟁심리는 SNS를 현실의 갈등이 그대로 재현되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만든다.
▶SNS를 지키기 위해, SNS를 넘어선 대화=결국 온라인에서의 갈등은 현실사회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문제는 사회 전반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신뢰의 수준”이라며 “사실에 대한 합의와 의견을 나눌 때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온라인에서는 서로 마음에 안 들면 ‘블록’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신뢰를 구축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뢰가 쌓이고 사회적 통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직접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 이 교수는 이어“단순히 사회지도층 몇명이 모여서 우리 통합했다고 선언하는 것 말고, 진짜 서로 다른 세대ㆍ계층ㆍ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고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호연ㆍ서지혜 기자/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