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청소하다보면 밤 10시…남편 가사분담 제도 활성화 시급
#매일 5시에 기상해 출근해야 하는 A 씨는 퇴근 후에도 잠을 안자고 보채는 두 살배기 아들 때문에 고생이다. 베이비시터는 A 씨의 퇴근과 함께 퇴근하고, A 씨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정장차림으로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 우는 아이를 달래고, 식사를 만들어주고, 씻기고 재우면 10시가 넘는다. 설거지와 청소 등 밀린 집안일까지 모두 끝내면 11시. 이 모든 일을 다 하기까지 누구도 A 씨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친정엄마는 멀리 사는 데다 영업사원인 남편은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야 들어오기 일쑤기 때문이다. A 씨는 직장에서 퇴근해 돌아와 육아와 가사를 하기 위한 ‘또 다른 출근’을 해야 하는 현실이 버거워 몇 번이나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워킹맘의 고충은 비단 아이를 돌보면서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남편의 가사분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가사분담이 불가능한 사회제도 때문에 워킹맘들은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워킹맘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70시간에 달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지난해 7∼8월 20세 이상 60세 미만 여성 2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자리와 생애사 실태조사’ 결과 10세 미만의 자녀가 있는 정규직 여성의 경우 주당 근로시간은 38.8시간, 가사시간은 38.3시간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워킹맘의 노동 시간은 배우자에 비해 13시간 이상 많은 것이다.
또 지난 해 민주노총금속노조가 전체 여성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 가정, 여가생활관련 실태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75.5%는 ‘구성원 중 평소 집안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본인’이라고 답했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도 84.4%, 배우자가 파트타임이나 부업을 하는 경우에도 57.6%가 ‘가사노동은 본인이 한다’고 대답했다.
워킹맘들은 여성들이 이처럼 가사노동을 도맡는 이유에 대해 인식의 문제를 지적한다. 대다수의 남편들이 육아휴직을 쓰기를 꺼려하고, 한국 특유의 남성중심 문화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
대한민국 워킹맘은 고단하다. 직장 퇴근 후에는 또다시 집으로 출근해야하는 우리나라 워킹맘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70시간이다. 남편보다 13시간 더 일하는 셈이다. 한 워킹맘이 출근길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
이런 상황 때문에 한국은 전세계적으로도 남편이 아내와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통계청의 ‘한국사회동향2014’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멕시코, 필리핀, 대만 등 12개 국가 중에서 식사준비, 세탁, 집안청소, 장보기 등의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비율은 일본이 가장 낮고 한국이 그 다음이었다. 특히 한국은 세탁, 식사준비, 집안청소 등 대부분의 세부적인 항목에서 하위권을 기록했다.
여성정책전문가 역시 제도보다는 기업과 남성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센터장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들어온 속도에 비해 남성들이 가정에 들어간 속도가 훨씬 더뎌 역할분담의 책임에 있어서 남성이 소극적인 편”이라며 “노동문화는 바뀌었지만 가족생활에서 성역할의 변화는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한국인들은 직장생활에 지나치게 과중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가정에서 아빠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하기 힘들다”며 “장시간 근로문화가 개선돼서 적정시간 일하고 퇴근해 직장생활을 하는 남성에게 가족의 시간을 되돌려주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배우자출산휴가, 근로시간단축제, 유연근무제 등 남성들이 접근하기 쉬운 제도를 장려해 육아와 가사노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