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前부터 전면전 양상
5개월만에 잠복모드로
신흥국 물가 앙등이 시위유발
혁명은 유가폭등 자극 악순환
체제안정위해 통화절상 용인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회담을 앞두고 환율 논쟁은 ‘전투 없는 전쟁(Phoney War)’에 비유될 정도로 사실상 전쟁 상황이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글로벌 경제를 암울하게 할 것이란 ‘환율전쟁’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물가전쟁’이 글로벌 핵심 이슈로 자리 잡았다. 환율과 물가를 놓고 고심하던 나라들이 체제안정 차원에서 물가안정에 정책 초점을 맞추면서 자연스레 통화절상을 용인, 환율전쟁의 포성이 멎는 분위기다.
▶유가, 곡물가 폭등=유가와 곡물가 폭등이 지속되면서 각 국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됐고 살인적인 물가는 급기야 ‘재스민 혁명’을 불러왔다. 이로 인해 촉발된 유가 고공행진은 식량 가격을 다시 밀어올리는 ‘도미노 인플레이션’ 파장이 일어났다. 블룸버그 통신은 “재스민 혁명이 일어날 다음 지역은 식량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아시아”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에 수출을 갉아먹는 통화절상만은 허락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던 신흥국들도 물가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통화절상을 용인하고 나섰다.
중동 사태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 인도분 가격은 장중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유엔(UN)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월 주요 55개 식료품 가격지수는 전달보다 3.5%나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물가상승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바클레이즈는 이머징 경제 물가상승률이 6%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선진국이 2% 이하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인플레 우려가 높아지자 그간 환율전쟁도 불사하겠다던 신흥국들도 꼬리를 내렸다. 유가와 곡물가 상승에 직접 손 쓸 방법은 없지만 임금과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물가불안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환율절상+금리인상 대응=인플레 기대 심리를 차단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금리와 환율 조정이다. 2월 페루, 중국,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이 금리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남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통화절상으로 물가상승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통화전쟁’을 처음 언급했던 브라질도 지난 1월에 이어 3월 초에 다시 금리를 인상하고 사실상 ‘휴전’을 선언한 상태다. 미국과 환율을 놓고 설전을 펼쳤던 중국 역시 물가상승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위안화 절상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이후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지난해 6월 이후 위안화를 3.7% 절상시켰다.
신흥국들이 환율절상을 용인하면서 국가 간 통화전쟁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7일 BNP파리바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이 지난해 9월 ‘국제 통화전쟁’ 발언을 내놓은 뒤 브라질, 태국, 한국 등 신흥경제국들이 자국의 통화가치 상승을 위협하는 투자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자본통제 조치를 잇따라 도입했다”면서 통화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그러나 아시아 각국 통화의 절상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고 판단하는 선진국의 압력이 언제든 가중될 수 있고 최근 달러 약세에 대한 신흥국들의 우려가 불거지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이 재연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인플레 타개를 위한 각국의 긴축 움직임이 글로벌 환율전쟁의 종식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