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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거늘...말(語)도 서울로?
뉴스종합| 2011-09-03 08:00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 16년전 지방자치의 기치를 내걸며 지방분권화가 시작되고 행정도시까지 건설되는 마당이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게 서울 중심이다. ‘말은 제주도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던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표준어’라는 이름으로 전국 공통의 대표말을 표준화하고 단일화를 유도해 온 한글말 체계는 짧게는 지난 1988년 표준어 규정이 제정되면서이고, 길게는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된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명시적으로 표준어 규정 제1항은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역을 불문하고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모든 말들이 나름의 가치를 갖는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언어에서 권력 관계를 간파한 미셸 푸코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표준어는 한국인들에게 서울말과 서울문화를 강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서울말만 표준어인가”=지난 2006년 5월 지역말 연구모임인 ‘탯말두레’는 “지역 언어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한 채 서울말만 사용토록 한 표준어 규정과 표준어로 교과서를 만들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교육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전국의 학생들과 학부모가 청구인으로 참여했던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를 선도하는 점,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 하기 어렵고, 서울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이라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한편 9명의 재판관 중 2명의 반대의견에서 “서울 지역 외의 지역 언어도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으로 이들 지역 언어 모두를 표준어 범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해당 지역민에게 문화적 박탈감을 주는 것”이라며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비록 소수의견이기는 하지만, 표준어에 대한 다른 목소리를 대변한 셈이다.

▶표준어 무용론 두고 학계도 설왕설래=학계에서도 표준어를 두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주최한 국어 정책 토론회에 발표자로 나선 윤석민 전북대 국문과 교수는 “표준어 폐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방언문제로, 표준어 선정이 불합리한 우열성의 원인이 되고 표준어 사용 권고가 자연스러운 언어의 발달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표준어와 방언의 관계를 오인한 데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서울말’에 방점을 둬 서울말이 아니면 왜 표준어가 될 수 없느냐, 서울말만 우월하냐 이의를 제기하는데, 방언이 언제나 비표준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며 “어떤 방언이든 구성원이 널리 사용하면 표준어가 될 수 있다. ‘멍게’나 ‘빈대떡’도 원래 방언이었지만 지금은 표준어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표준어는 한국을 대표하는 말로, 세계 도처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관과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크게 늘면서 이들에게 한국인의 삶과 문화 전반을 두루 알려줄 수 있는 도구로서 가장 적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무분별한 외국어,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의 사용 그리고 개인어의 오남용에 따른 우리말 파괴현상은 구성원의 동질감을 해치고 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표준어 사용의 유용성을 언급했다.

반대 토론자로 나선 강희숙 조선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교수는 “전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통일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 또는 대중적 정보 전달과 공통 문화 형성의 도구로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권력화된 나머지 비표준어에 해당하는 방언 사용자나 다양한 집단의 제한적 의사소통 방식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며 “표준어는 좋은 말이고 올바른 말인 데 반해 방언은 나쁜 말, 잘못된 말이라고 보는 인식은 어떤 면에서 ‘서울 대 지방’이라는 특이한 이분법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어떤 화자라도 표준어 구사는 서툴러도 방언으로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면 그것으로서 충분하다. 어떠한 규범이나 인식도 그러한 언어 사용을 부적절한 것으로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방언 역시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전개되는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통의 도구라고 본다면, 국어정책의 방향은 표준어 중심의 획일적 언어정책이 아니라 일종의 다언어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이다.

▶언어는 실생활의 반영=국어문화 운동본부의 남영신 회장은 “이번 표준어 추가 제정은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귀납적인 언어 체계를 거스르며 연역적으로 언어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표준어ㆍ비표준어로 양분되는 한글체계를 경계했다. 남 회장은 “‘먹을거리’에 밀려 비표준어 신세에 있던 ‘먹거리’는 그동안 조어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표준어에서 배제돼 왔다”며 “조어법은 말이 만들어지고 귀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써 왔고 굳이 못 쓰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간지럽히다’의 경우도 ‘간지럽다’를 어근으로 하고 사역형 접사 ‘히’가 붙은 형태로, 어법상 전혀 문제가 없다. ‘복사뼈’에서 ‘복사’는 복숭아의 준말로 ‘전설의 고향’에 흔히 등장하는 복사골도 복숭아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이다. 23년간 비표준어의 설움을 당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표준어 외에도 표준어에 포함되지 않은 어휘들이 표준어 대열에 끼기 위해 대기중이다. 현재 표준어로 돼 있는 ‘데우다’와 의미가 유사한 ‘덥히다’는 ‘덥다’에 피동형 접사 ‘히’를 붙인 것이다. 음식을 ‘데우는’는 것과 장작을 태워 방을 ‘덥히는’ 것은 의미상의 차이가 확연한 만큼 별도의 표준어로 추가해도 손색이 없다. (아이를)‘눕히다’는 ‘누이다’와 병용해도 무방하다.

남 회장은 “일반인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그래서 말의 세력이 세지면 충분히 표준어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좋은 말들이 비표준어로 전락하지 않도록 복수표준어를 넓게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계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표준어 선정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할 때 표준어가 ‘서울말’이 아니라 진정한 ‘한국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형 기자 @vmfhapxpdntm>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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