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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나눔인생 이상차 할아버지, “내가 그만두면 누군간 죽을지 몰라…”
뉴스종합| 2011-09-05 09:27
“후원받고 있는 김○○에요. 건강 때문에 춘천으로 갑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이상차(71) 할아버지는 낡은 검은색 휴대폰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몇달째 지우지 않고 있다. 문자메시지 속 김씨는 할아버지가 매달 쌀을 보내주는 독거노인 중 한명이었다. “나이가 꽤 많은 분이었어. 아마 마지막을 준비하러 고향으로 가는 걸거야. 꼭 그렇게 떠날 때면 나한테 문자를 보내더라고.”

이 할아버지는 매달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 52곳의 가정에 쌀 10㎏씩을 보낸다. 매달 쌀 값으로만 100만원이 넘는 돈을 기부한다. 겨울에는 내복 등 속옷도 기부한다. 지난 해엔 무려 300벌의 내복을 기부했다. “내가 기부를 그만두면 누군간 당장 살 수 없을지 몰라. 그래서 멈출 수가 없어.” 이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전쟁 고아, 명동 구두가게 사장이 되다=이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어머니와 단 둘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어머니와도 떨어져 지내게 되며 사실상 전쟁 고아가 됐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17살 때 기술을 배우기 위해 명동의 구두가게를 찾아갔다. 하지만 쫓겨났다. 밤에는 학교를 가야하니 오후까지만 일을 하겠다는 요구를 그 어떤 가게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직접 구두도매상을 차렸다. 명동 시장통 구석에서 두 사람이 앉기도 비좁은 작은 공간이 할아버지의 첫 사업장이었다. 원단이 없으면 미군 부대 근처에 가서 버린 군화를 가져와 원단으로 사용했다. 타이어나 알루미늄 캔을 이용해 구두 장식을 만들었다. 밥 한그릇을 세끼로 나눠 먹었다. “뭐든 부족했던 시절이었지. 군수물자 남은 것을 가져다 쓰면서 그렇게 장사를 했어. 어린 나이에 장사를 하는 게 쉬울리가 있나. 고생이 많았고 또 늘 배가 고팠지.”


▶40년 나눔인생, 기부의 산 역사=이 할아버지는 당시의 배고픔을 잊지 못한다. 그가 기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시작한 구두 도매상이 명동을 거쳐 남대문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사업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기부를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 배고팠던 설움을 잘 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소외된 이웃들을 보면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나만 잘먹고 잘살기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기부의 산 역사다. 그의 집에는 1970년대 라면이나 양말 등 생활물품을 기부하고 받은 기부영수증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수해지원모금방송에 참여해 성금을 냈던 기록까지 수십장의 기부 흔적이 남아있다. 색이 바랜 낡은 종이에는 한자로 ‘삼동보육원 양말, 라면 5만원’, ‘서울여자중학교 장학금 6만5000원’, ‘문화방송 수해지원금 10만원’등의 기록이 남아있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기부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1970년대까지만해도 양말, 치약, 라면 등의 공산품이 주요 기부 품목이었다. 지금은 경제적 여유가 되고 살만 하니까 쌀 같은 걸 기부할 수 있지만 예전엔 엄두도 못냈다”고 말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기부, 이젠 꼭 실천해야 할 의무”=이 할아버지는 불우이웃 쌀 값과 지역 사회 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동모금회) 등 모금단체를 통한 기부금까지 매년 평균 2000여만원에 달하는 돈을 이웃을 위해 쓰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이 할아버지가 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한 금액만 총 4600여만원이다.

이 할아버지는 “기부를 40여년 하다보니 이젠 의무가 돼버렸다. 마음 내킬 때 한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매달 해야한다. 가끔 형편이 조금 어려워져도 멈출 수가 없다. 내가 보내는 쌀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전화가 온다”며 “내가 좀 아끼고 덜쓰더라도 계속 해나가야한다. 기부는 내 직업의식”이라고 말했다.

지난 40여년동안 사랑과 나눔의 씨앗을 뿌려온 이 할아버지. 그의 마지막 소망은 장학회를 만들어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는 일이다.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다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선 일정 부분만 쓰고 나머지는 남에게 베풀기 위한 것으로 나는 그저 관리만 할 뿐”이라고 말하는 이 할아버지. 평생 나눔을 실천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내일’을 꿈꾸게 해준 그는 그렇게 겸손했다.

<박수진 기자 @ssujin84>
sjp10@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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