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男다른’ 열정으로…그녀의 도전은 계속된다
뉴스종합| 2011-09-26 09:39
금감원 감리위원등 경력 화려

현금영수증제도 이끌어낸 주역

“살림하는 여성, 경제에 더 예민”

“여성지도자 많으면 부패지수 내려가”

투명 경제시스템 구축에 관심

최근 교수평가 1위…인기만점 교수


“여성은 남성이 하는 것보다 2~3배는 잘해야 그나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여성이 맡으니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학술대회 준비하느라 눈도 빨개지고, 팍 늙은 것 같아요.(웃음)”

지난해 경영학 분야 학회에서 여성 최초로 회장으로 선출된 김성은(52)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1년을 분주히 보냈다. 경제ㆍ경영학 분야는 여성의 진출이 아직 미약한 곳으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기가 쉽지 않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만 해도 4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엘리너 오스트롬 미국 인디애나대 정치학 교수의 수상은 그의 학문 업적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한국경영교육학회 회장을 1년간 맡은 김 교수는 한국에서 당당한 여성 경영학자로서의 기반을 확실히 다지고 있는 중이다.

▶첫 여성 경영학회장, 역사를 새로 쓰다=지난 10일 열린 한국경영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후에 김 교수는 300여통의 전화를 직접 돌렸다. “학회를 준비하는 사람도 고생이겠지만 멀리 지방에서 학회에 참석하러 오시는 교수님들의 부담이 더 크실 겁니다. 참석하신 데 대한 감사전화를 돌리는 건 무엇보다 빠뜨리면 안 될 일이죠.” 그의 이런 세심한 정성은 학술대회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다.

이번 추계학술대회는 전국 각지에서 300여명의 학자들이 참석하고, 47편의 논문이 발표되는 등 경영학 분야 학술단체가 단독으로 주최한 학술대회 중 단연코 최대 규모로 성황리에 치러졌다. 내년도 새 학회장이 선출되고 이제 바통을 넘겨줘야 하는 김 교수로서는 더이상 흐뭇할 수 없는 성과다. 취임 당시 반대도 있었지만 지난 1년간 김 교수가 한 일을 되돌아보면 회장 잘못 뽑았다고 말할 이는 아무도 없을 듯하다.

그간 김 교수의 활동은 여성 경영학자로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미국 코넬대와 남가주대(USC)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1982년부터 미국의 아서앤더슨에서 근무했다. “당시만 해도 맨해튼 금융가에 여성이 거의 없었고, 한국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회계 쪽 공부를 하던 여성들에게 제가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김 교수는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쿠퍼스앤라이브랜드에서 세무컨설턴트로 일한 경력도 있다.

화려한 경력은 국내에서 교수직을 시작한 뒤에도 이어졌다. 금융감독원 감리위원, 기획예산처 공기업평가위원, 공정거래위원회 규제개혁심의위원, 증권선물거래소 주가지수운영위원, 대한화섬 사외이사 등 그가 거친 직함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김 교수를 빛나게 하는 것은 이런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실제 그가 추진한 정책들이다.

김 교수는 국무조정실 정책평가위원으로 있을 당시 현재의 현금영수증 제도를 이끌어낸 주역. 당시 정부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투명한 조세행정으로 가는 제도적 기반으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김 교수는 2004년 3월 현금영수증 제도로 조세정책 분야의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투명한 경제, 여성이 만들어야죠=“여성이 물가와 경기변동 등 경제에 대해 더 예민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보면 수컷은 싸우는 역할을 하고 암컷이 살림을 하잖아요.” 해외에 나가면 꼭 시장에 들러 물가를 비교해보고 생활 수준 등을 파악한다는 그는 경제 분야에서 여성의 장점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회계 쪽을 보면 누가 일을 더 많이 따오느냐는 사업 중심으로 평가하지만 일적인 측면에서는 뛰어난 여성이 정말 많습니다. 학연, 지연 등 네크워크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회가 적게 돌아가죠. 또 여성을 주요 보직에 등용할 때도 전문성보다는 시기적으로 적합한 인물을 찾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김 교수는 경제의 투명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결국 힘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민의 권익까지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그는 정부 및 기업 회계 시스템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실제 사례를 분석한 ‘투명성’이라는 책을 2002년 발간했으며, 2005년 그 두번째 책을 선보이기도 했다. “회계라는 것이 숫자가 중요한 것 같지만 수치보다 흐름에 밝아야 합니다. 내부 통제 시스템, 감사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의견을 표명하는 그런 일은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기업 정보를 만드는 일이거든요.” 그는 ‘빚이 없는 정치인이 더 낫다’는 것처럼 여성지도자가 많으면 부패지수가 내려간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학자로서 열정적인 김 교수는 교육자로서의 열의도 대단하다. 최근 경희대 국제캠퍼스 전체 교수평가에서 1위를 했을 정도로 인기만점인 교수님. 이번 추계학술대회 일을 돕기 위해 과거 재직했던 덕성여대 출신 학생들까지 찾아왔을 정도다.

“저와 인연을 맺은 학생들은 저한테 고맙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해요. 학생들이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합니다.” 2007년에는 우수 상담교수로 뽑히기도 한 그는 경영교육이 꼭 필요한 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이공계 쪽 교수들을 대상으로 경영교육을 한다든지 하는 일반인 무료 교육 프로그램은 그가 지난 1년간 학회를 꾸려오면서 적극 추진한 일이다.

김 교수는 현재 안식년 기간이지만 분주하고 열정적인 성격 탓에 한가할 틈이 없다. 그는 “항상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의사결정을 하면 후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교육을 통한 사회봉사부터 정부의 올바른 정책결정을 돕는 일까지 앞으로도 할 일이 많아요. 정말이지 일복 하나만은 타고난 모양이에요”라며 활짝 웃는다.

오연주 기자/oh@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지인들이 본 김교수는

“적합한 대안제시 탁월 의사였다면 천하 명의”

김 교수는 아무리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도 핵심적인 부분을 쉽게 찾아내고, 적합한 처방을 내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김 교수가 정부 경제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촉구하며 공공분야에서 지난 10여년간 남다른 실력을 보여온 것은 타고난 소신과 신념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

우리 공사의 비상임이사인 김 교수는 특히 공사가 수행하고 있는 국가적 주요정책에 대해서 문제점을 확실하게 지적하고, 소신을 갖고 대안을 제시해오고 있다. 한 예로 ‘용산역세권개발사업’ ‘공항철도 인수’ 등에 대해서는 정부의 방침이나 경기변동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이의 없이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 교수는 세세한 부분까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 교수가 의사가 되었으면 아마 천하의 명의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제자에 너무나 헌신적인 사람냄새 나는 스승”

교수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1997년이었다. 경영학과 4학년 과목인 경영학연습을 회계학과 교수님이 가르치시는 것도 신기했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학생들을 압도하시면서도 따뜻하게 격려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난 12년 동안 내가 보아온 교수님은 제자들에겐 너무나 인간적이고 헌신적인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스승이다. 우리를 보듬으면서 보다 나은 길로 인도하려고 애쓰는 존재이시다.

언제나 넘치는 열정과 패기로 진행되는 교수님의 강의는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매년 최고의 강의로 평가된다.

특히 우리들에게 ‘정의롭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라’며 정직, 성실, 진정한 용기와 정의감의 가치관을 강조하곤 하셨다. 또한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학생면담을 통해 개개인의 장단점과 잠재력을 파악한 후,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하시며 학생들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교수님이 나의 스승이시라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 너무 많이 힘들게 일하셔서 그런지 교수님이 부쩍 야위신 것 같아요. 최고 동안의 우리 교수님,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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