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정치이슈와 만난 팝아트" 성곡미술관 천민정 폴리팝展
라이프| 2012-01-17 10:56
민감한 정치 이슈들이 팝아트(Pop Art)와 만났다. 그러나 무겁지 않다. 밝고 쉽다. 노랑, 빨강의 전시실을 꽉 채운 디지털 페인팅과 조각, 영상을 감상하다 보면 ‘오호라!’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 신문로의 성곡미술관(관장 박문순)이 임진년 첫 전시로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천민정 작가(39, 메릴랜드 미대 교수)의 ‘폴리팝(POLIPOP)’전을 개막했다.

‘폴리팝’은 ‘폴리티컬 팝아트(Political Pop Art)’의 줄임말로, 작가가 지난 15년간 펼쳐온 탈 장르의 작품세계를 총칭한다. 천민정은 “중국 작가들이 정치적 내용을 팝아트와 결부시킨 작품을 많이 선보였지요. 그게 정치적 팝아트였습니다. 그걸 줄여 저는 ‘폴리팝’이란 용어를 만들어봤죠”라고 밝혔다.
동네 구멍가게 어디에서나 파는 긴 막대사탕 ‘롤리팝’(Lollipop)처럼 천민정은 첨예한 이슈들을 달달하니 먹기 좋게 요리했다. 때문에 작품들은 한결같이 직설적이고, 원색적이다. 에둘러가지 않고, 디지털 기법으로 대중이 관심을 갖는 정치 사회적 쟁점들을 거침없이 건드린다.



전시는 세파트로 짜여졌다. ‘오바마의 방’, ‘독도의 방’, ‘다이아몬드의 방’이다. ‘오바마의 방’에는 ‘Yes We Can! 오바마와 나’란 제목의 디지털 페인팅이 걸려 있다. 미국 정부가 2차대전 당시 여성들을 근로현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만들었던 포스터를 패러디한 이 작품의 왼쪽엔 오바마가, 오른쪽엔 작가가 등장한다. 두사람 모두 불끈 솟은 알통을 자랑하며, ‘우린 할 수 있어!’라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데 인종적, 이념적 공세에 시달리는 오바마와, 미국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자신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은 재치가 눈길을 끈다. 용띠 해를 맞아 오바마와 용 캐릭터를 나란히 배치한 작업, 석고 인형과 인형 애니메이션을 통해 오바마를 폴리팝 아이콘으로 변모시킨 시도도 흥미롭다.



‘독도의 방’에는 독도를 모티프로 풀어나간 정치적 작업들이 가득하다.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을 비롯해 한·중관계, 아시아와 서양문화의 관계를 디지털 회화로 담은 것. 작업을 위해 독도를 여러차례 찾은 작가는 독도에서 직접 촬영한 20분 분량의 필름과, 이를 토대로 제작한 가상 독도여행 프로그램 들을 나란히 선보이고 있다. 또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일본 만화영화 포켓몬에 빗대 표현한 ‘Pokeman’은 절대권력의 획일적 선동을 비꼰 작업이다. 




마지막 ‘다이아몬드 방’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소비행태, 자본주의 폐해로 인해 무너지는 경제와 문화, 환경문제를 다룬 디지털 회화를 볼 수 있다.

한 줄로 길게 52장의 디지털 사진들을 도열시킨 ‘Image a Day:Occupy 2011’는 작가가 지난해 인터넷에서 하루 1장씩 선정한 사진을 각 프레임에 7장씩 담은 설치작업. 이집트의 시민혁명, 영국 왕실의 로열웨딩, 일본의 쓰나미, 각종 자연재해, 스티브 잡스와 김정일 사망, 뉴욕 월가의 시위 같은 2011년 주요 사건사고를 한 눈에 일람할 수 있다. 이렇듯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디지털 시대를 맞아 무수히 넘쳐나는 정치 문화와 선동적 대중문화를 현대미술에 녹여낸 천민정의 작업은 그야말로 ‘오늘, 이 시대’를 말한다. 전시를 기획한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천민정의 이번 전시는 가히 시각이미지의 융단 폭격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왕성한 이미지 소화력은 압권"이라고 평했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의 딸인 천민정은 이화여대를 마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메릴랜드 미대에서 예술학 석사와 디지털이미징 아트석사를 받았다. 또 스위스로 건너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천민정은 데뷔초 우주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을 해왔으나 2005년부터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정치와 대중매체, 정치와 팝문화의 상관관계 등을 천착한 회화, 영상, 설치 등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볼티모어의 그리말디스 미술관, 뉴욕의 랜스 펑 미술관, 버지니아의 알링턴 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가졌던 작가는 올해 11월 뉴욕의 화이트박스 갤러리에서 ‘폴리팝:독도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또 5월에는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메릴랜드아트플레이스에서도 ‘폴리팝’전을 개최한다. 성곡미술관 전시는 3월11일까지. 02-737-7650. <사진제공=성곡미술관>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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