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고 우려 가짜계좌로 유인…입금 확실한 피해자에만 진짜계좌 알려줘
사람을 바로 앞자리에 두고 웬 메신저인가 의아해 하던 김 씨는 이내 말로만 듣던 메신저피싱임을 직감하고 돈을 보내줄 것처럼 위장해 계좌번호를 알아냈다.
이후 “보이스 피싱 그만해라”며 상대방을 놀려주고는 더 큰 피해를 막아보겠다며 뉴스에서 본 것처럼 100원을 해당 계좌에 입금, 통장지급정지를 시키려 했다.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 때부터였다. 돈을 보내려는 계좌가 ‘없는 계좌번호’라고 뜬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경찰에 문의해 보고서야 김 씨는 보이스피싱범들이 4만~5만원씩 하는 대포통장을 보호하기 위해 가짜계좌를 먼저 알려준 후 입금 의사가 확실한 사람에게만 진짜계좌를 알려준 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 씨는 “태어나서 보이스피싱을 직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계좌를 막아 더 큰 피해를 예방하려 했는데 가짜계좌를 알려주는 줄은 몰랐다. 다음부터는 진짜계좌까지 확인해서 막아야겠다”며 억울해했다.
지난해 11월 30일, 112신고만으로도 통장 지급정지 신청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되는 등 보이스피싱 계좌를 막기 쉬워지자 보이스피싱범들이 가짜계좌를 이용해 진짜 대포통장을 숨기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상대방이 정말 돈 넣을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단 가짜계좌를 불러준 후, “여기 돈이 안 들어가는 데요”라고 말을 하면 그제서야 “아, 번호 잘못 불러줬네, 진짜는 이거야”라며 진짜 대포통장 번호를 불러주는 방식이다.
이는 대포통장이 한 개당 4만~5만원선에 거래되는등 통장 자체도 값이 나가는 데다, 그동안 남들을 속여 번 돈이 들어와 있는 대포통장이 지급정지될 경우 범죄로 번 돈이 한꺼번에 동결되면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을 하는 사람들은 계좌가 들통나 지급정지신청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한다”며 “최근 일반인들이 보이스피싱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 잘 안 속아 넘어가는 데다, 112신고로 통장에 대한 지급정지가 가능해지는 등 보완장치가 나오자 피싱범들도 가짜계좌를 먼저 부르는 ‘안전장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고 설명했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