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해적 김용민 vs 정치인 김용민
뉴스종합| 2012-04-05 10:29
‘나는 꼼수다’는 이 시대의 해적이다. 기존 권력에 거침없이 퍼붓는 조롱과 욕설, 언어유희는 엄숙주의에 사로잡힌 정치권에 통쾌한 일격을 날렸다.

신랄한 음담패설로 인기를 얻은 ‘나꼼수’ 진행자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막말 논란에 휘말렸다. 성폭력적인 과거 발언에 이어 노인폄하 발언은 이제 막 정치인생을 시작하려는 김용민은 물론, 그를 공천한 민주통합당까지 옭아매고 있다.

김 후보는 2004~2005년 인터넷 성인방송에 출연, ‘시청역 앞에서 지랄하는 노친네들을 다스리는 법’이라면서 “에스컬레이터ㆍ엘리베이터를 다 없애면 엄두가 안나서 시청에 안 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영철(연쇄살인범)을 풀어서 부시, 럼즈펠드, 라이스는 아예 강간을 해서 죽이는 거예요”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제도권의 압력을 조롱하듯 가뿐히 무시하던 그였지만, 이번만은 쉽지 않아보인다. ‘시대의 후보’, ‘사윗감’으로 그를 지지하던 조국 교수와 공지영 작가까지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전날 그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가 또 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김용민 후보의 예전 발언이 문제로군요. 진보인사도 여성인권 인식이 낮을 수 있지만, 문제를 바로 보고 스스로를 바꾼다면, 점잖은 새누리당 후보에 비할 수 없이 낫다고 봅니다. 저는 김용민을 신뢰합니다”라고 적었다.

‘나꼼수’의 인기에 기대 김 후보를 정봉주 전 의원의 지역구에 세습공천했던 민주당은 이번 막말 파문으로 자가당착에 빠졌다. 김 후보와 비교하면 아주 사소한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석호익 후보의 공천을 문제삼아 새누리당을 ‘성누리당’이라고 공격했던 민주당이 이번엔 역공의 빌미를 줬기 때문이다.

김 후보의 딜레마는 해적의 옷을 입고 제도권 한가운데에 뛰어든 순간 시작됐다. 약자의 언어인 풍자와 패러디로 점철된 해적방송은 제도권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무차별 인신공격을 해도,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을 유포해도,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상식의 선을 넘어도 그들은 기정 권위에 도전하는 용감한 투사, ‘문화게릴라’로 용인됐다.

그러나 정치인, 특히 진보성향의 정치인에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가하는 유권자들은 김 후보에게 품격과 인권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해적 김용민’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투사지만, ‘정치인 김용민’은 자질미달의 음담패설꾼일 뿐이라는 것이다.

<주역>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믿음을 꼽았다. 윗사람이 그를 믿고 맏길 수 있도록 신뢰를 주어야하고, 아랫사람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덕을 갖추어야 한다. 믿음의 기본은 위치에 걸맞는 자질에서 나온다. ‘나꼼수’에서 권력을 꼬집던 김 후보는 이제 노원갑 주민과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대표가 되려한다. 그게 걸맞는 신뢰와 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인 김용민은 오늘도 월계역에서 출근길 인사를 하며 막판 선거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반성한다. 움츠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트위터에 쓰기도 했다. 문제가 있어도 그대로 밀고나가는 뻔뻔함은 그가 얼마 전까지 ‘나꼼수’에서 조롱하고 짓밞았던 정치인의 모습이다. 스스로 권력을 갈망하기 시작한 ‘나꼼수’에 초심을 기대해 본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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