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외로운 인간에의 치열한 성찰, 부르주아의 인물조각
라이프| 2012-05-29 10:27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지난 2010년 99세의 나이로 타계한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미국)는 ‘거미작가’로 불린다. 

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 미국 워싱톤DC의 국립조각공원, 일본 롯본기힐스의 모리타워 앞뜰에 세워진 거대한 거미 조각 ‘마망(Maman)’ 때문이다. 길고 긴 발가락을 곧추 세운 한쌍의 거미는 장관이어서 한번 본 사람은 잊기 어렵다. 작가의 자전적 삶을 형상화한 이 ‘마망’은 현대미술사에서 ‘최고의 여성조각가’로 꼽히는 부르주아의 트레이드 마크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 거장의 초기 작품과 말년의 완숙미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작품전이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 3관에서 개막됐다. 오는 6월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 타계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전시부제인 ‘Personages’는 저명인사를 가리키는 단어이자, 부르주아의 막대형 인물조각 연작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시리즈는 부르주아가 1945~1955년에 작업했던 추상화된 인물조각으로, 기다란 수직 조각은 저마다 한 인물을 상징하고 있다. 덤덤하게 생긴 흰 막대기, 푸른 삼각형이 켜켜이 쌓인 형상, 오밀조밀한 조약돌이 쌓인 듯한 형상은 젊은 시절 부르주아의 뇌리에 담긴 이들의 모습이다.



‘Personages’ 연작은 전반기와 후기 양식이 다소 다르다. 전반기는 단순한 형태가 주를 이뤘고, 1950년 이후에는 구조적으로 복합성을 띄며 다채로와졌다. 초기 작업이 주로 나무막대 한 덩이를 깎으며 조각했다면, 후기에는 반복되는 모듈 형식을 축적시키며 다이내믹한 운동감을 추구한 것이 차이점이다. 이번 한국전에는 ‘Personages’ 연작 13점이 나와 관람객들은 기다란 청동조각 주위를 찬찬히 걸으며, 조각의 물질적 현존뿐 아니라 조각과 공간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

191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38년 미술사학자인 미국인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한 작가는 프랑스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을 조각으로 재현해 옥상에 세워두고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타피스트리를 짜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부르주아는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괴롭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곤 그 울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작가는 “예술은 나에게 치유이자 구원”이라며 여성과 모성, 가족과 집이라는 주제를 끈질기게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즉 조각은 물론 회화, 드로잉, 설치, 손바느질 작업을 넘나들며 독보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자유의지를 반영한 밀도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 나온 부르주아의 대표적 후기 연작인 ‘밀실(Cells)’은 ‘가족’과 ‘집’이라는 주제를 인체 파편과 오브제를 결합해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설치작품이다. 커다란 철장으로 이뤄진 밀실은 ‘보호와 억압’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지닌 ‘집’의 이중적 의미를 은유한다. 내부에는 여성이나 남성의 생식기를 연상케 하는 오브제들이 매달려 있거나 바닥에 놓여있는데 모두 모호한 형태를 띠고 있다.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은 “이번 연작들은 그간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 선보였던 것들로, 내밀한 사적 이야기를 보편적 공감대로 이끌어낸 부르주아의 초기 대표작과 말년작이 함께 설치됨으로써 작가의 예술세계 변화를 살필 수 있다”고 밝혔다. (02)735-8449. 

사진제공=국제갤러리

yrlee@heraldcorp.com


<사진설명>
부르주아의 Cells 설치작업 ‘토끼털, 장신구 팔아요(Peaux de Lapins, Chiffons Ferrailles À Vendre)’(2006). 파리의 행상이 불렀던 민요에서 차용한 작업으로, 가정의 이중성을 커다란 새장에 빗대 표현한 작품이다.

인간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루이스 부르주아 조각 ‘무제’, 1947~49.

인간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루이스 부르주아 조각 ’무제’ 1954.

자신의 인물조각 옆에 선 젊은 날의 루이스 부르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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