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침대는 과학, 원전은 눈치?
뉴스종합| 2013-09-04 11:15
오래 전 한 침대회사의 텔레비전 광고가 생각난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이 광고 문구가 히트치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식탁ㆍ소파와는 달리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며 교사에게 반기(?)를 드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우스개도 있었다.

그런데 심지어 침대도 과학이라는데, 원자력발전소를 세우고 돌리는 일은 과학이 아닌 것 같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두고 하는 소리다.

전국을 떠들석하게 한 원전비리 사건. 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을 원전에 무더기로 사용한 것을 필두로 납품과정에서 자행된 뇌물공여 등 수많은 비리가 고구마줄기처럼 나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현재 전 사장부터 임원에 과ㆍ차장급까지 비리 혐의로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초토화됐다.

이제는 설거지를 해야 한다. 관련자를 잡아다 엄벌을 내리는 것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부품 교체로 멈춰선 원전을 안전하게 재가동시켜 올겨울 전력대란을 막는 것이다. 이미 한수원은 위조 검증서가 아닌 진짜 검증서를 갖춘 제어케이블을 지난 7월 구입해 교체 준비를 완료했다.

그런데 규제기관인 원안위가 문제다. 새 케이블이 LS전선 제품인데 최근 이 회사가 검찰 조사에서 담합 혐의가 포착되자 이에 대한 승인을 미루고 있는 것. 이은철 원안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LS전선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교체 일정이 불투명해졌다”며 “만일 미국 제품으로 교체하면 일러도 내년 3~4월에나 납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말은 바로 하자. 원안위는 원자력과 관련한 최고의 과학자가 모인 대한민국 최고이자 유일무이한 규제기관이다. 검찰이 담합을 문제삼는 부분을 과학자는 신경쓸 이유가 없다.

LS전선의 제어케이블이 품질에 이상이 없고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를 판단해 허가를 내주면 되는 것이다. 원안위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담합이든 뭐든 비리에 연루된 기업을 일벌백계하는 것은 맞지만 이 때문에 국민이 올겨울 또 생고생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 원전은 과학이다. 최고의 지성이 모인 원안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yjs@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