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권위(脫權威)란 어려운 과제일까. 거짓 완장에 불과한 권위에 한국인 대부분이 억눌려 살고 있다.
남성들은 ‘직업 권위’에 얽매여 있다. 소득이 높고, 권력을 쥔 자리에 입직(入織)한 자들은 권위가 하늘을 치솟는다. 고개가 너무 뻣뻣해 수그릴 줄 모른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판검사 앞에서는 괜히 어깨를 움츠린다. ‘직급의 권위’도 있다. 같은 직업이라고 해도 조금 높은 위치에 있다면 거만해지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 비굴해진다. ‘나이의 권위’도 무시할 수 없다. 나이가 많으면 존중하는 게 맞지만 무조건적인 굴종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엔 나이가 깡패(?)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학교의 권위’도 식을 줄 모른다. 소위 SKY 대학을 나온 자들은 자랑삼아 얘기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출신학교를 숨긴다. 학교 권위에는 대학만 있는 게 아니다. 평준화 시대에 학교를 다녔든, 비평준화 시대에 다녔든 졸업 고등학교가 이름 있는 곳일수록 권위가 선다. 하물며 ‘차(車)의 권위’도 있다. 고급 수입차가 많아진 요즘 차의 권위로 인해 남성들은 남모를 수치심에 휩싸이기도 한다. 값 비싼 수입차가 뒤쫓아오면 슬쩍 비껴가고, 차로를 바꿔주는 착한 운전(?)을 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신의 차보다 싼값의 차나 노후 차량이 다가오면 알아서 가라는 식으로 양보할 줄 모른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집의 권위’가 있다. 비싼 집에 살면 자랑하고 으스댄다. ‘남편의 권위’도 있다. 남편이 고위직이거나 스펙이 좋다면 여성들 사이에서는 서열관계가 형성된다. 여성들에게도 차의 권위는 있고, ‘명품백의 권위’도 있다. ‘성적의 권위’도 있다. 아이들의 성적이 좋거나 등위가 높을수록 서열도 올라간다. ‘얼굴의 권위’도 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형외과 시술 비용을 지출하기도 한다. 학생들도 비슷하다. 부모 직업의 권위, 부모 소유 집의 권위, 부모 소유 차의 권위가 있다. 미래세대들도 이런 권위에 억눌려 있다 보니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이런 아무 쓸짝에도 없는 권위가 대한민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권위에 억눌려 반드시 고치고, 헤쳐 나가야 할 많은 일이 미뤄지거나 방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위는 반드시 타개해야 할 과제다.
해외 선진국가에서는 탈권위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수그린다는 말이 맞다 싶을 때가 많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의 회장이 스스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부하직원들과 격의없이 토론하는 모습은 일상에 가깝다. 이들은 정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몸을 낮춘다. 낮추는 것이야 말로 권위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일례로 복지선진국으로 알려진 북유럽의 국회의원 가운데는 대형 승용차보다는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자들이 많다. 시민과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면서 시민의 입장에서 불편이 있는지를 살피고 개선하는데 힘쏟고 있다.
불편한 권위 이제 옷을 벗을 때다. 권위에 억눌린 사람들은 오늘, 바로 이 순간부터 그 거추장스런 권위에 딴죽을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
허연회 정치부 차장 okidok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