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기간 400달러에 묶여 있는 해외여행객 면세한도 조정 여부를 올해 안에 결정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정은보 차관보는 지난 27일 ‘규제개혁 회의 현장건의 후속 조치’ 브리핑에서 “400불 면세한도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좀더 연구를 해서 필요한 결론 내린 다음, 필요하면 이번 세법개정안에 반영을 목표로 해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기재부는 면세한도 인상에 부정적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세금을 ‘규제’로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7일 문화ㆍ관광 관계 기업인들과 간담회에서 “규제개혁을 주장하며 세금 얘기를 많이 하는데 세금과 규제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행정 절차상 규제라면 풀어야 하지만 세금 자체는 규제가 아니다“고 했다.
이해가 되는 말이다. 세금을 규제로 보기 시작하면 세정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00달러 면세한도’는 해외에서 물건 사서 들어올 때 ‘400달러까지는 세금 내지 않아도 되지만 그 이상이면 세금내고 들어오라’는 의미다. 말 그대로 ‘면세한도’이지 ‘구매한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둘째 면세한도 상향 조정의 수혜자가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는 계층이 전체 국민의 15% 선으로 이들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는 지적이다. 과세 형평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셋째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국내 소비가 위축돼 있는데, 면세한도를 높여 해외 소비를 장려할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정부의 논리는 이해하지만 몇십년 동안 놔두고 있는 것 또한 너무한 거 아니냐는 비판도 많다.
400달러의 면세한도가 설정된 건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면세 기준은 30만원,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약 400달러였다. 그 후 1996년에 달러 기준인 400달러로 바뀌었다가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26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500달러에서 2만6000만달러로 6배 가량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면세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싱가포르(234달러), 멕시코(300달러)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2400달러), 노르웨이(1003달러), 호주(902달러), 미국(800달러), 유럽연합(564달러) 등이 우리보다 높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중국(750달러), 대만(678달러)도 400달러를 넘는다.
면세한도를 넘어서는 물품을 구입해 몰래 들여오다 적발되는 사례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해외여행객 10명 중 4명 이상이 면세 범위 초과로 관세법을 위반했다. 이를 단속하기 위한 행정력 낭비도 만만찮다는 판단에 따라 관세청은 지난 2011년 면세 한도를 높이려 했다.
당시 관세청이 의뢰한 연구용역에서 2010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을 감안한 면세한도 적정성은 610~620달러로 평가됐다.
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