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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봄은 ‘꽃잔디’ 주단 위를 걸어 여름으로 건너간다
포토&영상| 2015-05-01 00:18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여러분들은 평소 컴퓨터 운영체제의 배경화면으로 어떤 사진을 사용하시나요? 기자가 취재현장에서 몇몇 동료 기자들의 노트북 컴퓨터 배경화면을 훔쳐보니 멋진 자연을 담은 배경화면이 자주 눈에 띄더군요.

그중에서도 이름 모를 꽃으로 덮힌 드넓은 초원의 모습을 담은 배경화면이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배경화면은 기자에게 무척 이국적으로 느껴지더군요. 그 느낌의 이유는 아마도 기자가 국토 면적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의 풍경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목장이 아닌 이상 우리나라에서 초원은 매우 드문 풍경이니까요. 하지만 봄이 여름을 닮아갈 무렵이면 우리나라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소소하지만 그 배경화면을 닮은 꽤 근사한 풍경이 펼쳐지곤 합니다. 그 풍경의 주인공은 꽃잔디입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부근에서 촬영한 꽃잔디.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꽃잔디는 미국 동부 지역 원산인 다년초 지피식물(땅을 덮으며 자라는 식물)로 4월부터 9월까지 꽤 오랫동안 연분홍빛 꽃을 피웁니다. 꽃모양이 패랭이꽃을 닮았다는 이유로 지면패랭이꽃이라고도 불리는데, 꽃잔디는 패랭이꽃과 다릅니다. 꽃잔디는 꽃고비과, 패랭이꽃은 석죽과이거든요.

꽃잔디는 지피식물의 특성상 밀생하는 가지를 뻗어 지면을 덮으며 자랍니다. 꽃잔디가 자라는 곳에 다른 식물들이 잘 뿌리를 내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꽃잔디는 자신의 거처에 촘촘하게 꽃으로 주단을 펼칩니다. 꽃잔디라는 이름은 절로 지어진 게 아닙니다. 이 같은 꽃잔디의 특성 때문에 최근에는 벌초의 번거로움을 덜고자 묘지 봉분에 떼 대신 꽃잔디를 입히는 경우도 많아졌죠.

꽃잔디는 성격이 무던해 볕이 드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편입니다. 이 때문에 꽃잔디는 도시의 조경을 위해 많이 활용되곤 하죠. 자연스러운 색이 귀한 도시의 거리 화단에서 마주치는 꽃잔디의 연분홍 빛깔은 각별합니다.

출처를 알 수 없지만, 꽃잔디에는 황량한 땅을 제 발로 찾아가 푸르게 덮은 잔디가 그 공을 인정받아 신으로부터 꽃관을 받았다는 전설이 서려있습니다. 무심코 밟아도 개의치 않고 아름다운 색으로 척박한 땅을 덮어 도시에 쉼표를 선사하는 꽃잔디에게 ‘희생’이란 꽃말은 우연의 산물이 아닐 겁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부근에서 촬영한 꽃잔디.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꽃잔디는 비록 흔한 꽃이지만, 무리를 이루면 여느 꽃 부럽지 않은 장관을 연출합니다. 특히 전북 진안군 원연장마을은 매년 봄이면 꽃잔디 축제를 벌일 만큼 꽃잔디로 유명하죠. 거대한 무리를 이룬 꽃잔디는 흐붓한 향기로 오가는 이들을 유혹합니다. 작은 꽃이 숨겨뒀던 향기가 이토록 짙다니 새삼 놀라울 겁니다. 마침 원연장마을에선 오는 5월 2일부터 5일까지 꽃잔디 축제가 펼쳐진다는 군요. 봄과 함께 향기로운 꽃잔디 주단 위를 걸어 여름으로 건너가 보시죠.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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