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문화스포르 칼럼 - 이종덕] 21세기, 달이 해를 품다
라이프| 2015-08-05 11:13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다. 필자도 지난주 온 가족이 모여 짧은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다. 딸 넷을 모두 출가시키고 부인과 단 둘이 사는 집에 여름휴가를 맞이해 네 명의 딸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오니 모처럼 집이 북적북적 시끌시끌했다. 수십년 전, 애들을 키울 때가 생각나 아주 흐뭇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딸들을 보고 있자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하면서 새삼스레 딸들의 위상이 상당히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아이를 낳고 키우던 시절만 하더라도,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낳았다’는 말이 일상적일 정도였다. ‘아들, 아들’ 말하는 시대였는데, 요즘은 ‘자식 하나를 낳아도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대세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사회 곳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여성들이 깨기 힘든 ‘유리 천장’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요직들에서는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낸다. 필자가 잘 아는 지인 중 한 명으로, 14ㆍ15ㆍ16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등을 지낸 김정숙 회장이 지난 5월, 터키 이즈미르에서 열린 세계여성단체협의회(ICW) 총회에서 대의원 200여명의 만장일치로 ICW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여성들의 리더 역할을 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그녀가 맡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고, 여성들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가정 내 여성 발언권도 세지고, 평등한 부부 관계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부모 세대들의 가치관이 변화하고, ‘딸이 있어야 노년에 덜 외롭다’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면서 요즘 우리나라를 ‘신(新)모계사회’라 부른다고 한다. 가정과 일터에서 여성들의 존재가 중요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처가살이도 마다하지 않는 남성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요즘 TV를 켜면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큰 인기다. 아내 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연예인 아빠들의 육아 도전기와 평소 표현이 서툰 아빠들이 딸과 함께 지내며 좌충우돌하는 내용을 담은 관찰 예능프로그램들이다.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신(新)모계사회’로 흘러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중심이 ‘여성’이 되면서 오히려 소외받는 존재가 되어버린 ‘아버지’, ‘남성’에 대한 관심이 반대급부로 떠오른 것이리라.

몇 년 전 유행했던 TV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치밀함과 카리스마를 갖춘 ‘미실’과 상식을 뛰어넘는 혜안과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덕만공주’ 두 여성이 천년왕국 신라를 좌지우지하는 역할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겠지만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미실’같은 직장상사, ‘덕만공주’같은 아내를 흔히 볼 수 있다. 당장 내 주변을 둘러봐도 생각나는 여성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

가부장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한국 사회가 ‘신(新)모계사회’로 흐르는 분위기는 성 역할의 경계를 허무는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뛰는 남자 위에 나는 여자’가 있다는 말처럼 여성들이 주도해가는 21세가 도래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일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그야말로 ‘달이 해를 품는 21세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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