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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 속 재취업 할아버지…“대한민국선 꿈도 못꿔”
뉴스종합| 2015-10-07 12:10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벤에게.

얼마 전 아들 내외와 함께 당신이 나오는 영화 ‘인턴’을 보았소.

인턴이라길래, 나는 우리 손녀처럼 취직 준비하다가 일 배운다고 회사 잠깐 다니는 그런 내용인 줄 알았더니, 나와 동년배인 당신이 인터넷에서 젊은이들 옷 파는 회사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소. 

우리가 나이는 들고 몸은 좀 성치 않아도, 산전수전 겪은 일들이 많아서 젊은이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정말 많지 않소.

당신은 인턴으로 일하면서 젊은 사람들 멘토도 되어 주던데 참 부러웠소.

또, 아내와 사별하고 무료하게 살다가 새 인생을 찾은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당신이 된 듯 울고 웃고 두 시간을 보냈다오.

벤, 여기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사실 꿈도 못 꾸는 이야기오.

일할 곳 찾기도 어려운데, 더군다나 나 같은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다오.

다들 내가 나이가 많아서 적응도 못 하고, 일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뒷방으로 밀려난 기분이오.

내 나이 올해 일흔하나인데, 요샌 작은 상가에서 경비로 일한다오.

이전에는 주차장 요금 받는 일, 한강 다리 통행요금 받는 일도 했지. 은퇴하기 전에는 당신처럼 회사에 다녔다오.

일자리 구하기가 막막해 용역 업체를 찾아갔더니 소개해 주는 곳이 죄다 건물 경비 아니면 주차장이더군.

물론, 당신네 미국에서도 당신처럼 멋진 경험을 하는 게 흔치 않은 일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오.

몇달 전까지는 24시간 근무하고 다음 날 쉬고 했는데, 도저히 힘에 부쳐 요샌 매일 오후 5시 반에 나가서 10시 반에 들어온다오.

그나마 낫지만 한 달에 딱 이틀 쉬오. 버는 돈은 70만 원. 딸아이가 그러던데 딱 최저 임금 수준이라고 하더군.

몸이 힘들지만 일을 할 수밖에 없다오.

연금도 못 받고, 아들 딸 가르치고 시집장가까지 보내고 나니 남은 돈이 있어야지.

얼마 전에 뉴스에서 보니 나 같은 노인 10명 중 6명이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 또 10명 중 6명은 생활비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일한다고 했다더군. 다들 먹고살기 힘든 모양이오.

당신이 제일 부러운 건, 동료도 있고 재미도 있고,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이라오.

젊은 기운도 그립지만, 내가 아직 쓸모 있다는 걸 느끼는 기분 말이오.

나는 혼자 일해서 다섯 시간 동안 말할 사람도 없고, 말할 일도 없고 참 외로다오. 그저 시계만 보고 있다오.

그래도 나보다 더 사정이 안 좋은 친구들은 폐지를 줍거나 공공근로로 20만 원 정도를 번다는데,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구료.

얼마 전 명절 때 만난 대학생 조카손녀도 취업이 안 된다고 울상이더군. 이래저래 살기 어려운 시절이요.

쓰다 보니 신세 한탄만 가득했구려. 이만 줄이겠소. 그럼 또 즐거운 소식 전해 주시오!

jinlee@heraldcorp.com

* 한국에서 경비로 재취업한 한 할아버지가 영화 ‘인턴’ 속 주인공 벤(로버트 드 니로)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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