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피플 & 스토리- 이병권 KIST 원장] “실패에 매이지 않는 혁신·불가능의 R&D에 도전”
뉴스종합| 2018-11-23 11:02
5년째 KIST 이끄는 이병권 원장 “성공률 30%도 높은 수준”
미세먼지·치매 등 국민 삶의 질에 밀접한 연구 착수
남북 과기협력 준비도 ‘착착’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국가 산업화에 큰 기여를 해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역할에 집중해야 나가야할 때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연구개발(R&D)이 아니라 산업계나 대학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혁신적이고 불가능한 영역에 포커스를 맞춰 나갈 계획입니다.”

도심에서 흔치않은 울창한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서울 홍릉숲에 터전을 잡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1966년 설립된 국내 첫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이후 ‘출연연의 리더’로서 국내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의 견인차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4년 23대 원장에 취임한 이병권 원장은 이후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장으로는 드물게 연임에 성공, 5년째 KIST를 이끌고 있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KIST에서 몸 담고 있는 이 원장은 KIST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통한다.

누구보다 국내 과학기술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의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지론은 ‘자율과 책임, 도전’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자율과 책임, 도전’이 미래 좌우=“최근 PBS 개선, 안정적 연구비 확대 등 과학기술계가 과거부터 요구했던 사안들에 대한 개선방안이 속속 발표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과학기술계가 추격형을 넘어 선도형ㆍ선진국형으로 전환하는 시작점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과학기술계가 도전·창의적 연구를 통해 선도형 혁신경로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자율과 책임,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장은 영국의 홀데인(Haldane), 독일의 하르나크(Harnack) 원칙과 같이 기본적으로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는 기술정책ㆍ제도가 정착돼 기관운영 자율성을 보장하고, 과학기술계가 스스로 미래를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권한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눈앞의 작은 성과보다는 10년 후를 바라보고 출연연이 도전적으로 수립한 역할과 책임(R&R)을 흔들림없이 매진해 반드시 실현할 수 있도록 보다 긴 호흡의 지원이 뒷받침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에 초점을 맞춰 KIST는 미세먼지, 치매, 재난 재해, 치안 안보 등 국민 삶의 질 향상과 밀접한 연구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KIST는 지난 4월 국방 안보, 재난 안전 등 민간영역에서 투자가 어려운 공공 사회분야에서 파괴적인 혁신을 창출하기 위한 일명 ‘케이-다르파’(K-DARPA:KIST, Demand-based Aim-oriented Research for Public Agenda)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케이-다르파의 목적은 명확하다. 재난ㆍ재해, 국방ㆍ안전 등의 문제해결로 국민 삶의 질 향상, 민간에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적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연구과제 성격에 따라 실증적용, 파급혁신, 한계돌파 등 3가지 프로그램으로 구분된다. 실증적용형 연구는 KIST가 보유한 기초원천기술을 활용, 방탄복 개발 등 국방 전력지원체계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수행한다. 중장기적으로 파급혁신형은 민간 공공에 혁신적 파급기술 제공, 한계돌파형은 미지영역 및 불가능 도전 위한 장기혁신 R&D를 추진하게 된다.

“국가연구개발사업 과제의 R&D 성공률 98%라는 수치는 창의ㆍ도전적 연구수행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연구현장에서는 보다 창의ㆍ도전적 연구를 추구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은 특정 주체가 아닌 과학기술계 모두의 책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혁신의 시작은 창의ㆍ도전적 연구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동시에, 이를 정착시킬 수 있는 연구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KIST가 먼저 새로운 모델케이스를 만들어서 다른 출연연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맡으려고 합니다.”

▶첨단로봇ㆍ빅데이터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확보=이 원장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KIST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4차 산업혁명은 민간기업 주도로, 정부는 합리적 규제 완화를 통해 혁신의 꽃이 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출연연은 중장기적 시각에서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기반ㆍ원천기술 연구로 기업의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관점에서 KIST는 양자컴퓨팅, 양자암호, 미래 반도체, 데이터 기반 연구플랫폼 등 5~10년 후 본격적으로 산업이 형성될 기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개별 기업이 확보하기 어려운 첨단 고가 연구장비ㆍ시설을 개방하고, KIST가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공유해 국내기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계획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기술 개발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이 원장은 “AI, 빅데이터, 로봇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필요한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을 구현하기 위한 별개의 기술이 아니라, 재료, 신소재, 바이오 의료, 스마트팜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인프라 역할을 하는 기반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북한 과학기술 분야 협력에 대해서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원장은 ”독일은 통일 전 과기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공동프로젝트를 통해 상호이해도를 높이고 협력성과를 도출한 바 있다“며 ”우리도 남북과학기술협력센터 설치 등을 통해 과학기술로 남북간 신뢰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원장은 “재차 강조하지만 R&D 성공률은 30%만 되어도 높은 수준”이라며 “성공ㆍ실패의 이분법으로 연구를 논하는 것이 아닌, 매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실패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구본혁 기자/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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