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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76.4시간 초과근무…한낮같이 불밝힌 시청의 밤
뉴스종합| 2018-11-26 11:37
한 직원이 기자와 문자로 대화한 장면 캡쳐. 지난해 예산과 직원이 세상을 등진 뒤 박원순 시장이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사과까지 했으나 올해도 3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등 서울시의 잔혹사가 올해도 반복되는 모습이다.

일손 못놓는 5층 예산담당관실
박시장 ‘살인야근’ 상황 못끊어
말에 그친 ‘노동존중 특별시장’
격무부서 대부분 잔혹한 현실


지난주 어느 평일 오후 10시30분 서울시청 신청사. 뒤늦게 퇴근하는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예산담당관 공무원이 있는 5층은 대낮처럼 밝았다. 직접 찾아보니 일과시간 못지 않게 바쁜 상태였다. 이들은 일상인듯 내선전화를 받고 업무를 처리했다. 이날 이야기를 나눈 한 공무원은 “예산담당관 공무원 상당수는 밥만 먹고 일만 할 때”라며 “오늘도 30% 이상은 새벽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지난 1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는 노동존중 특별시장’이라고 말하며 한국노총 집회에 참석한 지 일주일도 흐르지 않은 때였다.

76.4시간. 지난달 서울시 예산담당관 공무원 37명이 찍은 평균 초과근무 시간이다. 지난해 9월 격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공무원 A 씨가 몸 담은 부서의 현주소다. 당시 박 시장은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완벽한 대안을 만들 생각”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지난 2016년 22곳 중앙부처 일반 공무원의 한 달 평균 초과근무 시간(22.1시간)보다 3.4배 이상 높다.

노동존중 시장으로 당당하다고 밝힌 박 시장이 정작 자기 식구들은 ‘살인 야근’으로 몰고 있다. 특히 지난해 공무원 투신에 데인 그가 올 8~10월에는 요주 부서인 예산담당관을 예의주시할 법했지만 잔혹사는 여전히 반복되는 모습이다.

26일 헤럴드경제가 입수한 ‘서울시 공무원 초과근무 현황’에 따르면, 시 예산담당관 공무원은 평일과 휴일 구분없이 평균 지난 8월 69.6시간, 9월 63.3시간, 지난달 76.4시간 초과근무를 했다. 명절과 법정 공휴일도 큰 의미 없다. 추석 연휴인 9월23일에는 2명, 24일에는 1명, 25일에는 7명, 대체 공휴일이 된 26일에는 15명이 야근했다. 개천절인 10월3일에는 무려 30명, 한글날인 10월9일에는 28명이 초과근무자가 됐다.

대통령령인 공무원 복무규정을 보면 초과근무는 하루 4시간, 한 달 최대 57시간까지 인정한다. 예산담당관실 공무원은 ‘수당 꼼수’ 등 다른 이유 없이 오직 일이 많아 초과근무를 한 셈이다.

예산담당관실은 매년 8~10월에 일이 가장 많다. 국정감사, 행정사무감사를 준비하고 내년 시 예산안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기간이어서다.

시에 따르면, 예산담당관실은 지난 1일까지 35조7800억원을 웃도는 내년 시 예산안을 시의회에 내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올해보다 12.5%(3조9702억원) 많은 금액이다. 증가폭은 최근 8년 가운데 가장 크다. 근 2개월 반 전인 지난 8월16일 3조6742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기운을 뺀 후였다. 이 또한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는 같은 달 19일 박 시장의 ‘강북 집중투자 계획’에 따른 재원 검토라는 새로운 일도 도맡아 초과근무가 더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서울시 예산담당관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이는 직장인 익명 소통공간 ‘블라인드’에 “추경에 매달리고 갑자기 본 예산 검토를 하라더니 중간에는 공약사항 이행 업무를 하라고 해 일을 못하게 한다”며 “새벽 퇴근에 밤샘 근무하는 직원도 몇 있는데 내년까지 잘 버틸 수 있을지 좀 무섭다”고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예산담당관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시 격무부서로 손꼽히는 교통본부, 경제진흥실, 기후환경본부 등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과 한 직원은 “매일 11시 넘어가고 주말에도 나오는데 과장 갑질에 직원들 너무 괴로워 해요. 지금 이 시간(오후 11시 40분)에도 팀장포함 4명이 앉아 일하고 있어요. 이게 정상인가요…. 지들 승진하고 위에 잘 보이려고 해도 해도 너무한듯 해요. 매일 숨도 못쉬고 일하는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라고 했다. 심지어 “북한 계급사회도 이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국정감사, 행정감사때는 본부장, 과장 심지어 팀장들한테 예상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주느라 밤새우기 일쑤”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질문하면 국장은 국장위치에서 과장은 과장 위치에서 답변을 해야 하는데 주무관들이 어떻게 국장 과장 생각을 적어다 줄수 있냐”며 “우리가 국민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데 국ㆍ과장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 되는 것은 조직문화 때문이다. 한번 찍히면 퇴직할때까지 꼬리표가 붙어 따라다니기 때문에 부당해도 참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다 하다 못견디면 병가내고 들어가 쉬다 몇개월 뒤 다른 과로 옮기는 방법을 쓴다.

그래서 대부분 일이 많은 곳에는 근무평정 수(인사고과 최고)을 주는 방법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근무평정 수를 받으니 찍소리 말고 일한뒤 승진해 나가라는 것이다.

물론 박 시장도 할 말은 있다.

박 시장은 지난해 말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격무ㆍ기피 부서를 파악한 후 인원 충원 등 조치를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예산담당관 공무원도 30명 안팎에서 7명까지 추가 확보한 것이다. 일 자체를 줄이고자 5급 이하 실무인력 충원 규모도 지난해 168명에서 올해는 배 넘게 늘렸다. 박 시장은 지난해 공무원 일을 덜어주기 위해 휴대하던 수첩을 포기했다. 하루에도 많게는 수백건씩 내리던 ‘시장 요청사항’이 쓰인 물건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요주 부서였던 예산담당관의 업무 관행부터 달라졌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박 시장이 이런 상황에서 집회에 앞장서 노동자를 대변하고, 대권 행보라는 비판도 무릅쓴 채 지방순회를 하고 있으니 공무원 입장에선 쓴 웃음이 지어진다”며 “자기 정치 논란에 휩싸이기 앞서 집안부터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용ㆍ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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