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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의 거목 ‘영원한 국수’ 김인 9단 타계
뉴스종합| 2021-04-04 12:22

[헤럴드경제=김성진 기자] 한국바둑의 거목인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이 4일 타계했다. 향년 78세.

김 9단은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조-서시대(조훈현 서봉수)가 열리기 전까지 국내 기계를 평정한 당대 최강자였다. 김 9단은 통산 30차례나 우승을 차지했고, 준우승도 22회 기록한 바 있다.

194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인은 13세 때 상경해 원로 김봉선과 아마 고수 이학진을 사사하고 15세인 58년 프로가 됐다. 19세 되던 62년 제6기 국수전에서 조남철에게 도전한 김인은 1승 1무 3패로 패했다. 국수전이 끝나고 나흘만에 김인은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조남철의 소개 편지로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의 제자가 된 김인은 기타니 도장 사범 시절 조치훈을 지도하기도 했다.

김인이 같은 또래 유망주들을 상대로 80% 전후의 승률을 기록하자 당시 일본에서는 ‘머지않아 김죽림(金竹林) 시대가 올 것’을 점치기도 했다. 한국, 일본, 대만 출신 유망주들인 김인,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린하이펑(林海峰)이 조만간 바둑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김인은 63년 11월 스승 기타니 9단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 생활 20개월 만에 귀국했다. 엄격하고 규율이 강한 기타니 도장 생활이 자유분방한 성격의 김인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9단은 23세였던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당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조남철에게 3-1로 승리하며 타이틀을 차지했다. 조남철 시대를 허무는 첫 신호탄이었다.

김인은 이후 국수 6연패, 왕위 7연패, 패왕 7연패 등 국내 전 기전을 휩쓸었다.

1978년 김인은 13기 패왕전과 4기 기왕전에서 각각 조훈현, 김희중에게 패하며 마지막 타이틀을 잃었다. 이후 김인은 타이틀 획득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김인은 63년간 한국기원 전문기사로 활약하며 1568전 860승 5무 703패의 통산전적을 남겼다.

1968년 작성한 40연승은 현재까지 한국기원 최다연승 1위 기록이며, 67년 승률 88.1%(37승 1무 5패)와 68년 승률 87.72%(50승 7패)는 연간 최고승률 3위와 4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김인은 2007년부터 고향 강진에서 개최된 ‘김인 국수배’에 참가하며 아마추어들과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2007년 전국어린이 바둑대회로 출범한 김인 국수배는 2008년 국제시니어바둑대회로 업그레이드 됐고 매년 해외에서 대회장인 전남 강진까지 출전한 선수들로 국제대회의 위상을 갖춘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옥규 씨와 1남이 있으며 빈소는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 발인은 6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추모공원이다.

▷김인 9단 약력

-1943년 11월 23일 전남 강진 출생

-1958년 입단

-1962년 도일(渡日)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문하생(63년 귀국)

-1966년 제10기 국수전 우승 후 15기까지 6연패

-1966년 제1기 왕위전 우승 후 7연패(통산 8회 우승)

-1966년 제6기 패왕전 우승 후 7연패 등 통산 30회 우승, 22회 준우승

-1971년∼1975년 제5∼8대 기사회장

-1983년 9단 승단

- 2004년∼2021년 한국기원 이사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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