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근무하다가 이달 초 일본으로 귀국한 지인은 분주한 연말을 보냈다. 회사 동료와 가족, 친구들과 꽤 여러 차례 송년회를 했다. 일본 정부가 두 달 전 ‘위드 코로나’를 도입한 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평균 200명 안팎으로 유지되는 덕분이다. 그는 “대규모 회식이 아직은 부담스럽지만 4명 이하 소규모 약속은 많아 매일 저녁 바빴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처럼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는 확실히 활기가 돈다.
일본의 연말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니혼슈(日本酒)’다. 신세대 젊은이들이 니혼슈보다 맥주나 하이볼(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어 얼음을 넣어 마시는 칵테일)을 선호하는 추세이긴 하다. 그럼에도 직장 단위 송년회에서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술은 역시 전통주인 ‘니혼슈’다. ‘니혼슈’는 쌀을 발효시켜 만들었기 때문에 일본 주세법 기준으론 청주(淸酒)로 분류한다.
일본에서 ‘사카구라(니혼슈 양조장 브랜드)’는 전국에 1500개를 넘는다. ‘닷사이(獺祭)’를 비롯해 구보타, 고시노칸바이, 핫카이산 등은 우리 나라의 청주애주가 사이에도 인기가 많다. 명품 니혼슈가 탄생하려면 좋은 쌀과 맑은 물이 기본이다. 이런 양질의 원료에다 ‘도지(양조장의 제조 책임자)’의 장인정신이 살아 있어야 좋은 술이 탄생한다. 니혼슈는 장수 기업들이 주로 생산한다. 중부 효고현의 니혼슈 ‘겐비시’는 1505년 창업했다.
연말을 앞두고 일본 최대 니혼슈 전용 웹사이트인 ‘사케타임스(SAKE TIMES)’는 니혼슈 인기 랭킹을 발표한다. 품질과 가격, 소비자평판도 등을 조사해 순위를 매긴다.
2021년 1위는 야마가타현 다카기주조가 만든 ‘쥬욘다이(十四代)’가 차지했다. 향기가 좋고 감칠맛이 나는 술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회사 창업 후 15대째 대를 잇는 젊은 후계자가 품질과 디자인 등 브랜드 혁신에 성공했다. 한 병(720㎖·다이긴죠 기준)의 현지 소비자가격은 1만6480엔 이상으로, 꽤 비싼 편이다.
2위는 쌀의 고장으로 유명한 아키타현 아라마사주조의 ‘히노토리(陽乃鳥)’다. 8대째 제조책임자를 맡은 아라마사 유스케는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적이고 상쾌한 향미를 냈다”고 특징을 설명한다. 3위는 1665년 창업한 나가노현 오카자키주조의 ‘신슈키레이(信州龜齡)’, 4위는 아키타현 아라마사주조의 ‘넘버 식스’였다. 이어 지콘(미에현 소재), 하나아비(사이타마현), 소가펠에퓌스(나가노현), 가와나카지마겐부(나가노현), 후사노칸키쿠(지바현), 미야칸바이(미야기현) 등이 10위권에 포함됐다. 역시 쌀 맛이 좋고 물이 맑은 지역에서 생산된 술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보다 관심을 끄는 점은 새로운 양조기술과 마케팅기법을 갖춘 신세대 젊은 경영자들이 글로벌 수준으로 회사를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이 중장년의 입맛을 잡은 셈이다.
코로나 사태로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래도 2022년 연말에는 ‘바이러스 공포’의 시간이 지나가고, 한·일 여행길이 다시 열려 현지에서 니혼슈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