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3高에 돈줄 막힌 기업들…비상 대책 찾아 분주 [비즈360]
뉴스종합| 2022-10-23 09:01

서울 빌딩숲 모습[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현상’으로 국내 기업들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고물가에 따른 수요 부족 심화,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주요 기업들이 비상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다.

기업들은 최근 줄줄이 비상경영 회의를 열고 자금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전략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채와 대출 관련 금리가 상승하고 주식시장 악화로 외부 자금 통로가 얼어붙으면서 돈줄이 바싹 마르고 있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3년 및 중기 경제 전망’을 보면 국내 제조업의 경우 세계 경제 침체, 국제 교역량 축소, 공급망 불안 지속, 주요국의 통화긴축 정책 등 세계경기 불확실성의 확대로 2022년(2.7% 전망)보다 0.4%포인트 낮은 2.3% 수준의 성장세 둔화가 예상된다. 내년 서비스업 역시 글로벌 수요 둔화로 실질 부가가치가 2022년(3.3% 전망)보다 1.1%포인트 낮은 2.2% 수준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주요 제조업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수출 악화와 내수 위기까지 관측되면서, 내년을 어떻게 대비할 지 기업들이 문의해오는 경우가 많다”며 “현금 등 자금 확보 시기와 조달 방식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전자 업체 관계자는 “전반적인 내구재 수요 감소 추세 속에서 금리가 추가로 인상함에 따라 소비심리 위축 심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주요 기업들은 각각 계열사 사장단 회의, 최고경영진 워크숍을 열고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경영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SK는 19일부터 21일까지 CEO 세미나를 열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성과 관리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물론 미-중 갈등과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컨틴전시 플랜’ 발표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구광모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이 지난달 29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사장단 워크숍을 열고 경영 전략을 논의했다. 구 대표와 사장단이 오프라인에서 한자리에 모인 건 2019년 12월 사장단협의회 이후 약 3년 만이다. 구 대표는 “경영 환경이 어려울 때일수록 그 환경에 이끌려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POSCO홀딩스, 한화, 현대중공업 등은 일찌감치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위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위기감에 투자를 보류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당초 수립한 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백지화하는 대기업도 늘었다. SK하이닉스는 고심 끝에 4조3000억원 규모 청주공장 증설계획을 보류했다. 국내 대표 정유사 중 한 곳인 현대오일뱅크의 지주사 HD현대는 9월 27일 3600억 원 규모의 신규 원유정제시설 투자를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석유화학 기업 한화솔루션도 9월 초 투자비 급증을 이유로 1600억 원을 들여 질산 유도품(DNT) 생산 공장을 세우겠다던 기존 계획을 철회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과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맞물리면서 회사채 시장의 냉각을 우려하는 지적도 쏟아진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회사채는 외면받고 우량 기업에 쏠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자금조달력이 약한 중견·중소기업들에 대한 자금 압박이 더욱 가중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공개한 ‘2022년 3분기 공모회사채 수요예측 실시 현황’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공모 무보증사채 수요예측 규모는 5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했다. 2018년부터 4년 연속 300%대를 지속했던 경쟁률은 196%로 떨어졌다. 올해 3분기 수요예측 미매각 건수는 16건, 미매각 규모는 9500억원을 기록했다. 미매각률은 14%로, 전년 동기 대비 13%포인트 상승했다. A등급의 경우 미매각률이 58%에 달한다.

19일 기준 신용 스프레드는 125bp(1bp=0.01%p)로 벌어졌다. 2009년 8월 13일(129bp) 이후 13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신용 스프레드는 3년물 회사채(AA-)와 국고채 간 금리 차이로, 수치가 커질수록 시장 참여자들이 회사채 투자 위험을 높게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일 기준 3년 만기 회사채(AA-)금리는 5.736%로 치솟으며 올 들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빅3 통신사로 한번도 회사채 발행 시 미매각이 없던 LG유플러스는 최근 5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사줄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인상 기조에 발맞춘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역시 부담이다. 지난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주요 제조기업 대상 자금사정 인식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절반은 기준금리가 2.5%에서 0.25%포인트만 올라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취약기업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기업들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가 인상될 때마다 금융비용이 평균 2%씩 늘어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3고 영향으로 한계 기업들이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가장 큰 문제가 환율문제”라며 “엔화 환율이 매우 높아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자금을 빼면서 아시아 지역의 기업 등 위기감이 높아지는 데다, 금리가 올라가 채권이 팔리지 않아서 기업들의 자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 기업들의 상당한 부채로 인한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해서 기업이 부도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금융부실로 인한 금융위기 가능성도 높아지므로 기업도 정부도 관련 자금 조달을 위한 강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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