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IT과학칼럼] 과학, 무한한 프런티어
뉴스종합| 2023-01-26 11:22

최근 몇 년은 전례 없던 복합위기에 전 세계가 노출된 시기였다. 감염병 위기, 지경학적 위기, 탈세계화, 기술패권을 놓고 세계는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각국은 국가전략기술을 지정하고 자원확보를 위한 국가적 역량결집에 전력을 다한다. 미국은 반도체와 과학법 제정 및 주요 유망기술 선정을 기반으로 국가전략기술을 확보하고 산업·경제·안보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정책을 구사한다. 더불어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산하에 기술분석허브를 두고 과학기술의 예측·탐지·평가·분석 결과를 제공함으로써 국가전략기술의 원활한 목표달성과 활용·확산을 지원한다.

신흥·핵심 기술이 경제와 외교·안보를 좌우하는 기술패권 경쟁시대를 대비해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국가 차원으로 확보해야 하는 12대 분야 및 50개 세부 중점기술을 선정한 바 있다. 기술 분야와 더불어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민간 참여 확대와 R&D와 과학기술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다. 즉 과학기술은 국가의 경제와 산업을 넘어 국가 간 동맹, 안보, 외교 측면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자산이며 전략기술은 우리나라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자원이다.

이러한 관점과 정책이 낯설지 않은 것은 2차대전 전후 미국이 버니바 부시를 중심으로 펼쳤던 과학기술정책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부시는 MIT 출신의 공학자이자 행정가로,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오늘날 웹의 효시가 된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을 제시했고, 실리콘밸리에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렸으며, 2차대전 전후 미국의 R&D정책을 맡아 급속히 팽창한 정부의 역할이 과학기술정책 영역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한 바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청에 대한 답변으로 1945년 7월에 부시가 제시한 ‘과학, 무한한 프런티어(Science, Endless Frontier)’ 보고서의 핵심은 과학 영역의 개척을 위한 R&D의 필요성과 공공재로서의 과학지식의 지속적 생산을 위해 정부투자의 중심이 국방에서 국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군사목적 중심의 R&D가 남긴 과학적 지식들이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 확산돼야 하며 과학기술의 활용을 통해 일자리 창출, 국민복지 향상, 국가안보 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과학기술의 역할과 최근 몇 년간 우리가 직면해 있는 대외적 상황을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국가전략기술을 중심으로 한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핵심 과제를 본격 추진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향후 12대 국가전략 분야를 중심으로 한 범정부 차원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R&D투자 및 민관 협력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선행요인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백악관의 OSTP 산하에 기술분석허브처럼 우리나라도 국가전략기술 정책의 구현에 분석 기능을 강화한 국가전략기술 분석플랫폼을 마련해 과학적 의사결정과 분야별 적시 대응을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전략기술 확보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들이 우리의 미래에 무한한 프런티어를 열어주고 이를 통해 번영, 안보, 복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과학기술을 소리 없는 전쟁에서 우리가 우위를 점할 자산으로 생각한다면 부처, 기관, 기업도 반 세기도 전에 언급됐던 ‘무한한 프런티어’가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김은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데이터분석본부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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