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보렐 유럽연합 외교정책 수장이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해 이야기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가자전쟁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누적 사망자가 3만명에 육박하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미국이 국제외교 무대에서 코너에 몰리고 있다.
특히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채택이 또다시 불발되면서 일부 동맹국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막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 미국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적인 휴전에 반대한 것과 관련해 거듭 비판받았다고 22일 보도했다.
WP는 "이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고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G20 외교장관회의 주최국인 브라질의 마우루 비에이라 외교부 장관은 미국에 대한 성토로 회의를 시작했다.
비에이라 장관은 유엔 안보리의 기능이 마비됐다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무대책은 무고한 인명 손실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인 호주 대표로 참석한 케이티 갤러거도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지지했다. 또 100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초래할 수 있는 더 큰 파괴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경고했다고 WP는 전했다.
그는 "우리는 이스라엘에 다시 한번 이 길을 가지 말라고 말한다"면서 "이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자행했다고 비난해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날레디 판도르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제관계협력부 장관은 세계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이) 처벌받지 않도록 허용해왔다고 비판했다.
판도르 장관은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실망시켰다"고 말했다.
앞서 남아공은 지난해 12월 29일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린 이번 G20 회의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나란히 참석했다.
WP에 따르면 G20 회의 참석자들이 보다 솔직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회의의 한 세션이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오디오 헤드셋을 통해 회의 내용이 중계되면서 일부 기자들이 참석자들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WP는 실수로 중계된 참석자들의 발언은 지난해 인도에서 열린 G20 회의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G20 회의에서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기 위해 세계 강대국들의 단합을 모색했다.
하지만 1년 사이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바뀌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다자 문제 전문가인 리처드 고원은 1년 전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를 수세로 몰아넣었다면서 하지만 "이제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사태에서 주도권(grip)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11월 선거(미국 대선)에서도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고 WP에 말했다.
블링컨 장관이 G20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브라질에 도착하기 며칠 전에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비유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사망자가 급증하자 유럽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휴전과 교전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헝가리를 제외한 유럽연합(EU) 26개 회원국은 가자지구에서 즉각적인 인도적 교전 중단을 촉구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장관회의가 끝난 뒤 26개 회원국이 지속적인 휴전으로 이어질 즉각적인 인도적 교전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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