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피카소의 도예, 입체파를 빚다..이건희 회장의 선물[함영훈의 멋·맛·쉼]
라이프| 2024-09-11 11:16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멋·맛·흥·힐링이 있는 남도 기행의 허브는 광주광역시이다.

이곳에 가는 것 만으로도 아시아 민속문화들을 탐방하고, 지구촌의 예술 여행을 할 수 있다. 바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다. 가성비-감성비가 최고인 여행이라 할 만 하다.

이건희 컬렉션, 피카소 도예 ‘마스크를 쓴 얼굴’은 이 전시회 안내포스터에 등장한 피카소의 대표 도예 작품이다.
ACC
미래상 수상작 전시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에서 1㎞ 떨어진 곳, 옛 전남도청 별관 자리에 터잡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아시아의 문화 교류와, 문화자원 수집·연구, 콘텐츠의 창·제작, 전시, 공연, 아카이브, 유통이 한 곳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세계적인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이곳에선 현재 수십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경주에서 발굴된 4~5세기 인면유리구슬과 거의 흡사한 것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 궁금증을 낳는다. 지금은 ‘거대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는 인도네시아 등 찬란했던 고대 동남아시아 무역항의 교역문화와 해상실크로드에 대해, ‘몬순으로 열린 세계: 동남아시아의 항구도시’ 전시가 어느 정도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오는 2026년 2월1일까지 일정으로 상설전시되고 있다.

국민 소풍터 ACC 하늘마당
ACC내 ‘파묘’ 촬영지

‘아시아문화박물관 특별전시-천일야화의 길’(아라비안나이트)은 올해 말까지 아시아문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또 ‘아랍문자, 예술이 되다’는 오는 11월 24일까지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 2관에서 진행중이다.

▶이건희와 피카소 그리고 도예= ACC에서 요즘 관심을 모으는 것은 영화 ‘파묘’ 촬영지, 이건희 회장의 대국민 기증 피카소 작품전, 퇴근후 예술을 맥주잔에 채워 마실 수 있는 한잔하는 캠퍼스 잔디밭 같은 하늘마당이다.

국민들은 이곳에서 아시아문화를 흠뻑 향유한뒤 ‘진정성’ 카페에서 우아한 휴식을 취하고, 하늘마당에서 삼삼오오 정담 깃든 소풍을 즐긴다.

이건희 컬렉션 ‘피카소 도예’는 오는 29일까지 일정으로 ACC 복합전시 4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ACC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전시이다.

전시장 입구

피카소가 도예를 했다는 점이 놀랍고, 고(故)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 귀한 피카소의 도자기를 수집해 국민에게 기증했다는 점이 감동적이다.

거대한 신전을 연상케 하는 백색 전시장에 100여점의 각양각색 도자들이 모습을 보인다. 여인 형상을 한 물병, 새 그림이 그려진 주전자, 사람 얼굴로 가득 찬 접시까지. 순수함과 독창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피카소 도예 작품은 2021년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피카소 도자 작품 112점 중 107점이다.

파블로 피카소, 여인 램프

여인, 신화, 동물, 올빼미, 얼굴, 투우 등 9개 주제로 섹션이 구성됐다.

피카소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는 ‘여인’이다. 가장 먼저 마주한 ‘여인’ 섹션에서는 그의 뮤즈인 자클린 로크를 모델로 한 물병과 화병, 도조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물고기, 염소 등 작업실에서 키운 다양한 동물을 담아낸 도자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피카소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올빼미’에 특별한 애정을 지녔는데, ‘여인의 얼굴을 한 올빼미’, ‘어린 올빼미’ 물병 등 작품에서 그러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전체 전시작 가운데 49점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작품은 ‘얼굴’을 주제로 한 도자다.

파블로 피카소, 큰 새와 검은 얼굴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피카소는 ‘아프리카 가면’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이고 상징적인 조형의 얼굴을 도자로 표현해냈다.

‘투우’를 주제로 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그중 1950년에 제작된 ‘투우와 사람들’은 원형 투우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관중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는데, 접시가 갖는 미학적 가치를 더욱 극대화한 작품이다.

다방면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예술미를 구현하는 도예는 피카소의 추상 입체파 회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방정환과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의 길, 아라비안나이트는 1001일 동안 밤마다 페르시아 재상의 딸 세헤라자드가 왕의 폭정을 잠재우기 위해 들려주는 이야기로, 300여개 스토리들이 옴니버스 형태로 엮은 것이다. 스토리는 끊임없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ACC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천일야화’의 기원과 전승 과정, 19세기말 시작된 우리나라의 번역사, 아랍인의 생활 풍속 등 아시아 문화와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아라비안나이트의 현대적 활용

근대 최초의 한글 번역 소설인 ‘유옥역전(1895)’이 ‘천일야화’를 번역했다고 한다. 이후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27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소개하며 ‘열려라 참깨’를 우리에게 친근한 “열려라 콩”, “닫혀라 팥”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ACC는 매번 책장을 넘기면 새로운 이야기와 그림이 펼쳐지는 팝업북처럼 ‘천일야화’의 화자 세헤라자드가 새롭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총 8장의 주제로 구성했다. 주한이라크공화국대사관에서 기증한 전통 이라크 남성 의상도 전시된다.

▶찬란했던 동남아 다시읽기= ‘몬순으로 열린 세계: 동남아시아의 항구도시’는 아시아문화박물관 상설전시라서 긴 기간 국민들을 만난다.

동남아 전통 하이엔드 직물 바틱입어보기

‘몬순(monsoon)’은 거대한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된 대륙풍과 인도양 해풍간의 온도 차가 만들어내는 계절풍을 말한다. 과거 항해술이 발달하기 이전, 아라비아 상인들은 계절풍 ‘몬순’의 특성을 이용해 바닷길을 오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몬순을 따라 전개된 동남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에서의 교역과 문화교류, 항구도시를 오간 이들이 만들어낸 고유한 문화 쁘라나칸(Peranakan)과 예술작품을 선보인다.

2017년 11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네덜란드 델프트 헤리티지와 협약을 통해 수증받은 ‘누산타라 컬렉션’ 중 400여 점의 아시아 유물이 우리 국민을 만난다.

화려한 그림과 조각, 신성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금속공예품, 열대의 문양을 품은 옷과 직물 공예, 자연에서 채득한 라탄으로 만든 목공예 등 동남아시아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신화와 신앙, 집과 옷, 이색적인 일상용품을 들여다 본다.

동남아 옛 항구

투명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통해 선보이는 그림자극과 가면극, 라마왕자의 성장과 모험을 가상현실(VR)로 체험해 볼 수 있는 ‘라마야나 이야기’,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인 ‘가믈란’을 연주해 볼 수 있는 ‘디지털로 즐기는 가믈란 연주’, 인도네시아 전통복식인 바틱과 이캇으로 만든 의류를 만져 볼 수 있는 ‘손끝으로 만나는 바틱과 이캇’ 등 체험 활동도 마련돼 있다.

그림자극 와양(Wayang)은 인도네시아에서 주로 행해졌으며, 어둠이 짙어지는 저녁에 시작해 아침해가 뜨기 직전 막을 내린다. 하얀 장막이 쳐지면 관객은 장막 앞쪽과 뒤쪽에 앉는다. 장막 앞쪽에서는 가믈란 앙상블, 화려한 인형들, 인형을 조정하는 공연자 달랑을 볼수 있고, 장막 뒤쪽에서는 인형의 그림자극을 볼수 있다. 왕의 남자에서 나온 장면이 연상될 것이다.

인면유리구슬, 경주출토
인면유리구슬, 자바섬 지금도 제작

경주에서 발굴된 5~6세기 인면유리구슬은 인도네시아 자바산과 흡사하다. 우리가 해상실크로두의 한 주역임을 알수 있게 하는 유물이다. 자바인들은 인면유리구슬을 만들었던 문화적 특성때문인지, 인형극을 즐겼다. 그들은 인형극을 삶의 숨결 또는 인간 삶의 투영이라 불렀다.

ACC는 이번 전시를 향후 남아시아실로 확대할 예정이며, 다음 주제인 ‘스텝(초원) 바람’을 배경으로 하는 중앙아시아실도 준비 중이다.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선:인버스’전

▶아주 특별한 AI 판타지 영상= ACC는 혁신적인 미래가치와 가능성을 확장시킨 창조적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한 융·복합 예술 수상 제도로 ‘미래상’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수상자는 김아영 작가이다. 김아영은 사실과 허구, 기록과 재현, 역사 다시쓰기 등을 폭넓게 탐구했다. 아울러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미래사회 등의 컨셉트를 SF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이번 ‘딜리버리 댄서의 선:인버스’전을 통해 김아영은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수많은 전통적 역법과 시간관에 주목한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인버스’전. 시간과 달력 부터 의심해보기로 한다. 진실을 찾는 과정이다.

각 문화권에는 그들의 역사와 철학이 반영된 다양한 시간관과 달력이 존재했지만, 오늘날 전 세계는 그레고리력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간과 역법의 공용화는 근대화와 글로벌화 과정에서 발생한 제국주의와 정치권력의 상호작용과 관계한다고 작가는 보고 있다.

작품은 서구 근대화 이후 사라져가는 여러 문화권의 전통적 우주론과 시간 체계를 소환하며, 이를 현대미술의 내러티브로 복원하려는 작가의 시도를 담고 있다.

대형 시계 옆에 쉼없이 디스플레이되는 영상물은 일정한 컨셉트를 인식하고 있는 AI가 문명비판적 시선으로 만들어가는 창작물이다.

‘정립’되었다고 하는 것들의 다시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여성 AI

시·공간의 재해석, 주체를 객체로 보고, 객체를 주체로도 보며, 우리가 기준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상물에서 여성 AI는 진실을 찾고, 전방위적 혜안을 얻으려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간다. 초창기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다가, 몇 해전 부터 풍요로운 콘텐츠를 국민에게 보이려고 배전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ACC 처럼.

abc@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