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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모완일 감독, "대본이 주는 감동을 오롯이 전하고 싶었다"
라이프| 2024-09-18 17:51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한여름 펜션에 찾아온 수상한 손님으로 인해,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 드라마다. JTBC '미스티', JTBC '부부의 세계' 등 디테일에 강한 모완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장르적인 성격이 더욱 강화되면서 모 감독의 개성이 더욱 많이 발휘돼, 인물의 심리와 극의 분위기는 더욱 세밀해졌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깊은 숲속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전영하(김윤석)와 모텔의 주인 구상준(윤계상)이 엄청난 상황 변화를 맞이하는 스릴러다. 영화는 그림을 그리는 유성아(고민시)의 이상한 집착으로 인해 일상이 완전히 무너진다. 상준도 8명의 여성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모텔에 들어온 후 살인을 저지르면서, 자신의 인생도 바뀌게 된다. 얼핏 불친절한 전개도 있지만 모완일 감독의 연출 역량, 음악을 활용하는 방법 등 전체적인 연출 개성이 잘 드러난다.

모완일 감독은 나영석, 신원호, 김원석, 김성윤, 박현석 PD등과 KBS 입사동기다. 그는 KBS 스페셜 등에서 연출 실험을 하며 실력을 키워갔다.

"처음에 TV쪽 현업에 있었고, 2회까지 안보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안된다고 연출을 배웠던 사람이다. 그게 너무 강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연출하면서 시청자가 참고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가와 대화를 했다. 10명중 1~2명만 보더라도 대본이 주는 감동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었다. 저는 울면서 대본을 읽었고, 울면서 작업했다. 저는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울게 되더라. 세상에 혼자 된 느낌이 일맥상통했고, 이런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모완일 감독은 모텔과 그 공간에서 오래 찍다 보니 환기가 잘 안되고, 어느 순간 여기서 벌어진 인물들이 생각나는 등 자신도 작품의 감정에 완전히 빠진 듯 했다. 충남 논산의 사유지인 휴양림에서 촬영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매회가 시작될 때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큰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라는 대사가 나온다. 모 감독은 이 같은 인트로 대사를 넣은 이유에 대해 "해석은 시청자가 맞다. 정답이 없다. 숲속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졌을때, 느낌을 공유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촬영을 끝내고 배우들이 그 내레이션을 했다. 각자 8개월간 작업했던 감정들이 모두 달랐다. 각 인물들이 그 대사를 각각 다른 느낌과 감정으로 읊조렸다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진행 방식이 불친절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상준의 감정과 영하의 상황이 교차되면서, 돌고 도는데, 혹시 두 사람이 동일인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모 감독은 "장난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영하의 감정이 판단한다. 시청자는 겪지 않았는데도 상준 감정을 느끼게 하고싶었고, 영하의 감정까지 동일선상에 놓고 모두 경험하게 만들고 싶었다. 진행 방식을 친절하게 한다고 해서 드라마의 매력이 살아난다고 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모 감독은 "실제 쿵 소리를 못들어서 그렇지 더 심할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 무너져가는 가족들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하와 상준 관련 두 사건을 이어주는 인물인 파출소장 보민(이정은)의 역할도 이전에는 보지 못하는 수사관이다. 보민은 '술래'라는 별명답게 범인을 본능적으로 찾아낼 줄 안다. 하지만 범인을 강력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거리를 두며 계속 관찰한다. 게다가 젊은 보민(하윤경)과 어른 보민(이정은)의 싱크로율도 떨어진다.

"이정은 배우님과 평생 한번은 작업해보고 싶었다. 꾸밈 없는 게 좋았다. 젊은 분(하윤경)도 가식이 없었다. 두 사람이 안 닮았다고 하는데, 주인공이 아니고 옆에서 바라보는 역할이다. 본인이 사건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사건을 이어주는 인물이 필요했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도 있지만, 형사가 바라볼 때 그 감정이 궁금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음악 분위기를 잘살린다. 음악이 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감정이 휘몰아칠 때의 음악은 시너지를 낸다. 모완일 감독은 "사운드 팀의 이번 작업은 쉽지 않았다. 한국드라마중 가장 고퀄 기술을 담아보자고 했다. '개미'로 불리는 음악감독은 '소년시대' 음악 작업을 하신 분이다. 저하고도 같이 해오던 분이신데, 이번에도 한땀한땀 작업하며 공간음악을 완성해냈다"고 알려주었다.

김윤석과 윤계상, 이정은은 베테랑 배우라 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윤계상은 노인 분장을 위해 무려 13kg를 감량했다. 이와 함께 유성아 역을 맡은 고민시의 활약과 구상준의 아들인 구기호 역의 박찬열이 돋보인다. 캐스팅 당시만 해도 고민시는 완전 신인이었다고 한다.

"고민시가 맡은 성아는 미스터리한 팬션 손님이다. 그 때만 해도 뭔가 짊어지도 갈 배우가 아니어서 걱정했다. '서진이네2'에 나오고, 잘하더라. 바쁜 스케줄인데, 워크홀릭 같은 분위기다. 공개되면 이 친구는 주목 받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고민시 씨는 개인적으로 볼 때 대단한 사람이다. 2차례의 오디션때 예쁜 구두를 신고오셨다. 대본을 보고 임하는 자세가 진심이고 디테일했다. 제 후배가 연출한 저예산 드라마 ‘5월의 청춘’에서 고민시를 보니, '저 친구는 뭔데 저렇게 열심히 하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과 돈이 열악하면 그걸 배우가 본다(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고민시 씨는 그걸 안본다는 느낌이다. 그게 연결돼 진짜구나. 힘든 건 안보고, 하는 것만 본다. 잘 될 사람 같더라."

성장을 멈추고 어린 아이 같은 감정으로 살아가는 기호 역의 박찬열은 연쇄살인범 지향철을 계속 추적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린다. 기호의 종반부 대사 "우리 엄마는 그 새끼가 다녀간 방에서 죽었고, 아빠는 영원히 그 사건속에서 살고있는데, 지향철은 자기가 만든 감옥에서 나갈 준비를 끝냈다"는 말이 여운을 남긴다. 뭔가 시사 다큐물에서도 접했고, 영화 '밀양'과도 연결되는 정서다.

모완일 감독은 나영석 PD 등 2001년 입사한 KBS 27기들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했는데, 도저히 안쓸 수가 없는 재밌는 표현을 썼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난 동료들이다. 화려한 느낌이 아니고 주류가 아닌 느낌이다. '나의 아저씨'(김원석 PD)의 상계동 이미지, 신원호 PD는 뭔가 세련되고 강남을 지향하지만, 송파구 냇가 물고기를 잡던 게 본질이다. 이 처럼 촌스런 인간들이 세련된 공간에 왔다. 일하는 방식은 각자 너무 다르지만, 시청자를 상대로 뭔가 멋진 걸 하고 싶어한다. '내 삶을 즐기겠어' 같은 것도 없이 다들 자기 세계에 빠져있다고 해야하나. 2000년대 초반에 각자 현장에서 고민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모완일 감독은 JTBC에서 함께 일하던 함영훈 프로듀서, 김성윤 PD 등과 카카오로부터 투자를 받아 스튜디오플로우를 차리고, 차기작으로 영화 ‘내부자들’을 차기 시리즈물로 제작하는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 시리즈물 주인공에는 송강호가 확정됐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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