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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크림 튜브를 처음으로 잘랐다...50만원 한달살이 도전기
뉴스종합| 2024-10-10 11:08

월급날, 당신의 기분은 어떠합니까.

기자는 한 줌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느낌이었다. 돈 나갈 곳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통장 속 숫자는 ‘내꺼인듯 내꺼 아닌 내꺼같은 너’였다.

3년 연속 근로자의 실질임금 하락, 물가상승률에 한참 못미치는 소득 증가율.... 소비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변화가 필요했다. 기자와 같이 밥을 먹던 직장인 전지현(가명) 씨가 맞장구를 친다. “이번달엔 뭘 줄여야 할지 모르겠어.”

월 생활비 ‘50만원 챌린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도대체 어디에 돈을 쓰고 있고 어떻게 아껴야 할지 알고 싶었다.

기자와 전지현씨가 시작한 일에 30대 초반 청년 둘이 동참했다. 넷은 8월 한달 매주 월요일, 변동지출 소비 내역을 카카오톡으로 공유했다. 단, 변동지출 항목과 소비 성향은 개인별로 다르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노력에 집중해 체험기를 읽어주시라.

▶준비...그대는 무엇을 줄일 수 있는가=50만원 챌린지는 고정비용이 아닌 변동 지출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절약하되 자신의 소비 패턴을 알고 목적이 분명한 소비를 하자’는 게 공동의 목표였다. 하우스메이트와 사는 기자와 신혼부부인 전지현(무자녀) 씨, 부모님과 거주하는 신동엽(혼자 남성, 가명)·김태희(가명) 씨가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챌린지 대상을 ‘지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소비’로 정했다. 기자는 주거비, 교통·통신비, 보험료, 운동비, 마사지비(거북목 개선용)는 고정 지출로, 경조사비와 휴가비는 별도 통장으로 관리한다. 우리의 챌린지 대상은 대체로 식비(카페비, 외식비), 쇼핑, 편의점, 택시비에 맞춰졌다. 챌린지 기간은 8월 한달이지만 2주 전부터 각자 휴대폰 보험, 스트리밍 서비스 등 활용도가 낮았던 지출을 정리하며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절반만 50만원대 지출...절약에는 성공=결론부터 말하면 4명 중 절반만 50만원 대로 지출을 줄였다. 하지만 돈을 아끼는 데는 모두 성공했다. 평월 대비 신동엽 씨는 최소 50만원, 나머지 3인은 인당 15만원~20만원 지출이 줄었다.

한달 간의 성적표를 먼저 공개한다. 특히 고물가 주범인 식비(혼밥, 약속, 간식비, 카페 등 포함)는 별도로 표시했다. 이들은 업무 특성상 점심 식대가 대부분 지원돼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10~20만원의 부담이 적은 케이스다. 아이 또는 반려견이 없는 것은 챌린지를 하기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챌린지 결과 공개.

김기자, 87만5617원(식비 71.3%)

신동엽 씨, 99만3060원(식비 65.7%)

김태희 씨, 58만1516원(식비 60.5%)

전지현 씨, 50만3100원(식비 29.6%) →1등.

우선 기혼자인 지현 씨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은 식비 비중이 60~70%였다.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청년 1인 가구의 총 생활비는 168만원(비수도권 153만원)이다. 수도권 기준 월 평균 식비는 51만원이었다. 식비 비중이 높은 기자와 동엽 씨는 각각 62만4717원을, 65만2040원을 지출했다.

기자는 유명하다는 음식은 먹어 보는 성격이다. 외식도 잦다. 2만원짜리 두바이초콜릿을 샀고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3만원을 넘게 베이글을 사는 사람이었다. 동엽 씨는 술 약속이 많았고, 태희 씨는 데이트 비용 부담이 컸다. 공통점은 ‘나가서 먹으면 기본 3만원(식사 후 카페까지)’을 체감했다는 점이다.

▶미식 애호가 김기자는 어떻게 ‘20만원’을 아꼈나=기자는 고정지출로 쓰는 통신비의 힘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통신사 쿠폰으로 영화를 보며 관람료는 1만5000원을 아꼈다. 상영관 내 팝콘과 콜라는 언감생심, 집에서 계란과 바나나를 챙겨갔다. 영화관은 냄새 안 나는 외부음식을 반입을 허용한다.

강연을 들으러 갈 땐 커피 스틱을 텀블러에 담아갔다. 얼음은 없었지만 마시면서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무료인 회사 커피 머신을 지난달처럼 자주 찾은 적은 없었다.

서울페이, 모바일온누리상품권도 적극 활용했다. 끼니별 1000~5000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기후동행카드는 기자와 지현 씨의 교통비를 지켜 준 공신이다. 5만5000원(청년 전용 가격, 따릉이 제외)에 서울 시내에서 무제한 대중교통이 사용 가능했기 때문이다.

라구 파스타가 생각날 때는 요리 애플리케이션 ‘만개의 레시피’를 열었다. 소량의 다짐육, 토마토 페이스트, 양파, 당근 정도만 샀다. 미리 필요한 식재료는 휴대폰 메모장에 리스트를 적어뒀다. 그리고 주2회 오아시스 5000원 할인 쿠폰이 나오는 날에 맞춰 주문했다. 밖에서 라구 파스타(1만원대 후반)를 먹는 가격으로 4인분을 만들어 먹었다.

50만원 챌린지 중에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새출발하는 친구에게 맛있는 밥을 대접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검색을 통해 인당 1만9000원인 ‘가성비 오마카세 초밥집’을 찾아냈다. 오마카세는 최소 5만원부터인 줄 알았는데, 그런 곳이 있었다. 정보의 힘을 느낀 날이다.

▶매일 아침, 커피를 픽업하던 출근길과 ‘헤어졌다’=술과 약속을 포기할 수 없었던 동엽 씨는 다른 소비에 변화를 줬다. 출근 전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주문하던 습관과는 이별했다. 웹툰 결제도 멈췄다.

“출근길 커피 주문만 한 달에 20번, 8만원 정도 썼는데 이번달엔 3번만 시켰더라고요.”

대신 회사 복지로 제공되는 무료 커피 쿠폰을 쓰느라 땀을 많이 흘렸다. 폭염 속 골목길에 있는 카페를 찾아 수백미터를 걸었다. 이러한 일상의 변화로 동엽 씨는 지난달 커피값 약 10만원을 아꼈다.

데이트 코스에도 변화를 줬다. 숲을 볼 수 있는 도서관과 무료 전시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그 전에는 생각도 하지 않은 곳들이다. 친구들과 새 술을 찾아 마실 때도 콜키지를 활용했다.

“당연하게 계산하던 걸 돌아보게 됐어요. 음식과 어울리는 새 술을 찾는 게 취미인데, 식당에서 바로 술을 사기보다 미리 술을 정해 콜키지하면 생각보다 아낄 수 있더라고요.”

▶먹고 싶은 거 있어? “당근부터 찾아봤어요”=태희 씨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 쓰던 택시비를 3만원대로 줄인 것에 만족해 했다. 줄이고 싶었지만 좀처럼 안 됐던 목표를 이뤘다.

“매장을 지나다가 혹은 쇼핑 앱에 들어갔다가 예쁜 게 보이면 사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지나고 보니 사고 싶었던 옷이 무슨 옷이었는지 기억도 안나더라고요. 그동안 충동 소비가 많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영화 데이트를 나서기 전 태희 씨는 당근마켓에서 팝콘 세트를 구매했다. 저가커피 한잔 가격인 2500원을 아꼈다. 음주 상태에서 대리기사를 부를 때도 통신사 할인 혜택을 적용하는 걸 잊지 않았다. 태희 씨는 챌린지를 하며 쓰던 선크림 튜브를 잘랐다.

“처음 잘라 봤는데 3~4일은 더 쓸 수 있는 양이 나왔네요. 시간도 번 셈이죠.”

▶쇼핑과 잠시 안녕...“옷장정리로 기부까지 할 줄이야”=도전자 4명 중 성공에 가장 가까웠던 지현 씨는 챌린지와 시작과 함께 아침이 변했다. 출근길 텀블러와 미숫가루통을 들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텀블러 사용자는 스타벅스(400원) 등 카페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쇼핑이 취미였던 지현 씨는 새 옷을 사기보다 옷장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생각보다 이미 가진 옷이 많더라고요. 안 해 본 스타일링으로 코디를 했고 안 입는 옷들도 많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기부하려고요.” 의류는 아름다운가게 등에 기부하면 액수에 따라 연말정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지현 씨는 ‘옷을 안 사도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경험 자체가 신선했단다. “없던 옷들을 찾아내게 되고, 항상 화장품을 쟁여뒀는데 그걸 멈췄어요. 사기 전에 집에 먼저 있는지부터 찾고요.” 급하게 사야 했던 수분 크림은 친구 찬스를 써 50% 임직원 할인을 받았다.

▶챌린지로 얻은 것과 알게 된 것=일상을 바꾼 4인의 노력에도 50만원 챌린지는 실패했다.

다만 4명 모두 한 달의 소비를 기록하고 소비 패턴을 파악하는 일에 성공했다.

“가계부를 처음 써봤거든요. 매달 목표 저축금액만 저금하면 그 안에서는 그냥 돈을 쓰던 스타일이었어요. 제겐 ‘50만원 줄이기’ 챌린지였어요.” (동엽 씨)

챌린지를 하며 우리는 건강관리가 일종의 저축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아프면 ‘의지를 지킬 힘’을 잃어서다. 의지를 지킬 힘을 잃으면 배달 앱은 가까워진다. 재유행한 코로나에 걸렸던 태희 씨가 그랬다. 병원에 간 그날, 배달과 간식·과일값으로 쓴 돈이 7만1100원이었다. 진료비·약값(1만1600원)의 6배다.

챌린지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소비들이 있었다. 지현 씨에겐 꽃을 선물하는 일이 그랬다. 1만원, 1만3000원 가격 사이에서 고민은 했지만 지인의 기쁜 일을 축하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태희 씨에겐 자주 못 보는 연인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월세를 안 받고도 잘 곳을 제공해주시는 아버지의 허리를 위해 매트를 사드리는 일이 중요했다. 기자도 한 달 전 잡아 둔 부모님과의 뷔페 식사를 취소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소비’도 있었다. 모두 막을 수 있는 돈들이다. 동엽 씨는 우산을 깜박해 예상치 못한 소비를 했다. 전자담배 디바이스를 잃어버린 후 일회용 전자담배로 바꾸면서 담배값도 평소보다 늘어났다. 태희 씨와 지현 씨는 집에서 갖고 나오는 걸 잊어서 노트북 충전기와 양치도구를 샀다. “반차 쓰고 가지러 갈까 고민도 했거든요. 사실 2개까지 필요가 없는 건데 좀 더 잘 챙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어요.”(4만원이 넘는 노트북 충전기를 샀던 태희 씨)

네 사람 모두 체감한 건 챌린지 후 ‘한 번 더’ 생각하는 소비 습관이 생겼다는 점이다. 기자만 해도, 유료 가계부 대신 무료 네이버 가계부를 쓰며 이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태희 씨는 챌린지 후 몇 년간 멈췄던 블로그를 재개했다. 아끼되 ‘벌이’ 자체를 늘려야겠다는 판단이란다. 요즘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생계를 위해 부업을 한다(직장갑질119, 올해 설문조사 결과)더니 그 또한 ‘N잡러’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번외편=물가도, 세상도 각박한데 챌린지 속 숨 쉴 구멍 하나는 만들어 놓았다. 환급이나 중고물품을 판매해서 수입이 늘면 적자를 메울 수 있도록 말이다. 기자와 지현 씨는 몇 달 전 신청했던 기후동행카드 청년 환급액이 8월에 입금(각각 2만8000원, 7000원)돼 진실로 기뻤다. 기자는 의욕이 앞서 샀지만 1년 간 보지 않은 책들을 알라딘 중고 서점에, 안 쓰던 운동기구들을 당근(중고 거래, 총 약2만원)했다. 동엽 씨는 사 놓고 쓰지 않았던 애플 펜슬과 거의 입지 않은 티셔츠를 지인에게 팔았다(총 12만원). 이렇게 메꾼 4인의 적자는 총 18만700원에 달한다. 김희량 기자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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