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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면 한다”…전쟁 폐허 딛고 한강의 기적·IT강국 실현
뉴스종합| 2011-01-06 14:03
외부로부터의 끝없는 위협

뚜렷한 목표의식·책임감 키워

“알아야 산다” 강한 탐구열

국력 상승 원동력 작용



‘우리 마누라’, 영어로 ‘our wife’. 서양인이 들으면 깜짝 놀랄 한국인의 희한한 어법 ‘우리’ 속에는 특유의 결속력과 단합된 의지가 녹아 있다. 이런 한국인 특유의 결속력은 근ㆍ현대 경제사(史)에서 자주독립을 지켜냈고 ‘한강의 기적’을 이뤘으며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1905년 일제는 우리 경제를 예속시키기 위해 차관 도입을 강요했고 2년 뒤 외채는 1300만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나라가 77만여원 적자예산 상황에서 도저히 외채를 갚을 길 없는 신용불량 상태에 빠지면서 국채보상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 남성들은 담배를 끊고 여성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빼냈다. 한 달여 만에 전국에서 230여만원이 모금됐다. 일제의 극렬한 탄압으로 결국 진전 없이 좌절됐지만 국가적 위기에 항거한 한국인의 결집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1948년 정부가 세워졌지만 한국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끼니를 걱정하는 지구상 최빈국이었다. 설상가상 한국전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광복 직후 전체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했던 한국은 그러나 한국전 이후 수입대체 공업화를 추진, 문경시멘트공장, 충주비료공장, 인천중공업 등이 폐허 위에 세워졌다.

기마민족의 용맹과 지혜는 숱한 역경 속에서도 한국민의 잠재력으로 남아 폐허를 세계적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헤럴드경제DB]
외환위기 직후 1998년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금 모으기’ 운동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인의 결속력은 진가를 발휘했다. 1998년 1월 초 시작된 금 모으기 운동에는 351만명이 참가했다. 모두 227t에 이르는 장롱 속 금을 끄집어내 수출했다. 국민들은 금을 싼 값에 팔아 희생하는 대신, 나라의 위기 극복에 동참했던 것.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은 세계인을 놀라게 했고,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부의 규제 철폐 노력도 호응을 얻어냈다. 2001년 8월에는 IMF 관리체제를 조기졸업했다.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 앞바다.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부딪쳐 1만2547㎘의 기름이 쏟아지는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사고가 터졌다. 그러나 검은 재앙으로 뒤덮였던 태안 바다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인간띠를 이뤘다. 가족끼리, 직장 동료와 함께 쏟아진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130만명이 훨씬 넘는 국민들이 맨손으로 서해안에 몰려들었던 것. 결국 이 같은 자원봉사 활동으로 태안 바다는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회복될 수 있었다.

이후 월드컵과 같은 국가적인 행사나,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결속력은 두각을 나타냈다. 2002년 월드컵은 개인주의와 지역주의로 찌든 사회에 ‘하나’라는 일체감을 형성했고, 2008년 금융위기도 안정적인 위기관리로 극복하면서 세계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 특유의 결속력이란 열정적인 집단 에너지를 국가적ㆍ사회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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