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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성인소설 알리바바(164)
라이프| 2011-01-20 14:37
<164>파멸의 시작(42)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며칠간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된 후, 드디어 유민제련그룹에는 새로운 가구로 장식된 전략기획실과 스포츠마케팅 TF팀이 번듯한 모양새를 드러내게 되었다. 하필 그 두 부서는 회장 집무실로 향하는 복도 양편으로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으므로 날마다 그 앞을 지나쳐야 하는 유민 회장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저게 뭐야? 골프채 아닌가? 미치겠군. 사무라이들이 칼을 벽에 걸어놓는다는 소린 들었어도 백수건달이 골프채를 벽에 걸어놓은 꼴은 처음 보는군. 꼴값을 떠는 게야.”

새로 부임한 스포츠마케팅 팀장의 뒤쪽 벽면에 장엄하게 걸려 있는 드라이버를 보면서 유민 회장은 쓴 입맛을 다셨다. 더구나 그 밑에 붓글씨체로 휘갈겨 쓴 ‘My Way’라는 글씨를 본 순간 그는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촌스럽게 영어를 붓글씨체로 써놓은 건 또 뭐야?”

난항이 예견되는 순간이었다. My Way… 누가 뭐라 해도 오로지 제 갈 길만 가겠다는 도전장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것은 필시 마누라가 자기에게 던진 도전장임에 분명했다. 그러니 유민 회장의 머리에 쥐가 날 수밖에.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사실 유민 회장의 머릿속은 며칠 전, 임의동행 형식으로 끌려간 자리에서 높은 양반과 약속한 자동차 경주 이벤트에 관한 생각으로 그득 차 있었다. 말이 약속이지 협박과 다름없는 제안 아니었던가. 많으면 3000억, 적게 잡아 2800억원이 소요될 자동차 랠리를 이끌어가기에도 힘이 벅찰 판에 골프에 연관된 사업까지 펼쳐야 하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이게 모두 지겟작대기를 잘못 놀린 죄 값이로군.”

유민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바지춤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지껄였다. 맞는 말이었다. 지겟작대기를 잘못 휘두른 바람에 일이 얼마나 복잡하게 꼬였는지. 그놈의 지겟작대기는 어찌 해서 치마만 보면 벌떡벌떡 일어서는지 도통 알 재간이 없었다. 곰곰 생각할수록 자기가 얽어놓은 남녀 상관관계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도저히 암산으로는 계산할 수 없었으므로 그는 A4용지 한 장을 꺼내어 ‘남녀 상관관계도’를 천천히 그리기 시작했다.

‘현성애 -베트남, 강유리 -몽골, 송유나 -유리의 성.’

근래에 형성된 남녀관계만 해도 벌써 세 갈래로 가지를 치고 있었다. 그걸 도식화하여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삼각형 형태가 될 터이지만, 사실 내면의 관계까지 그려보자니 별 모양보다도 더욱 복잡한 5각, 6각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현성애 -3미터 전방의 지뢰, 강유리 -직통전화를 통해 날아오는 미사일, 송유나 -마누라의 감시하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이를테면 세 명 모두 몸친구이긴 했지만, 마누라에게 들키는 날엔 폭탄으로 변할 수도 있는 불안한 존재들이었다. 이 상황을 조금 더 깊게 그려보자니 정말이지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현성애에겐 일찌감치 큰 몫을 떼어주겠노라고 약속했고, 강유리와는 전 세계를 돌며 골프여행을 하자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송유나는 근래 4~5년간 접대를 핑계 삼아 벌여온 애정행각의 리스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니 셋 중의 어느 하나만 폭발해도 인생이 끝장날 판이었다.

“결국 마누라가 원수야.”

마누라가 원흉이라고 결론은 지었으나 어쩔 도리는 없었다. 하물며 원흉의 사주를 받은 작자들이 회장실 양 옆으로 진을 친 채 전략기획실, 스포츠마케팅팀 등등의 간판을 걸어놓았으니 사면초가와 다름없었다.

“이봐요, 미스 주! 내게로 좀 와요.”

유민 회장은 자동차 랠리에 관한 참고서류를 뒤적이며 인터폰으로 신입 여비서를 찾았다. 그러나 막상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미스 주가 아니라 현성애 과장이었다.

“회장님, 찾으셨어요? 정말…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오자 유민 회장의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오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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