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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와인의 좌절과 영광
뉴스종합| 2011-01-21 09:20
흔히 와인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프랑스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나라가 떠오른다. 하지만 사실 북위 30~50도 사이, 남위 20~40도 사이에 걸쳐 있는 온대지방 대부분의 나라에서 와인이 만들어진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칠레, 호주 와인의 약진이 눈에 띈다.

와인의 산지를 구분할 때 유럽에서 생산된 와인을 ‘올드 월드(Old World)’ 와인으로 부르고, 미국이나 칠레 등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뉴 월드(New World)’ 와인이라 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옛날부터 와인을 만드는 유럽의 여러나라와 유럽 열강의 식민지 개척 이후 와인을 만드는 나라를 구분하는 큰 기준이 된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미국 와인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미국 와인의 90%가량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다. 한 마디로 캘리포니아라고 해도 면적이 우리나라의 4배(40만㎢) 정도에 달하는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다양한 기후가 분포한다.

그 중 특히 우리가 흔히 접하는 나파밸리나 소노마밸리는 여름 기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온난다습한 기후로 흔히 지중해성 기후라 칭해 와인용 포도 재배에 최적의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낮 시간의 뜨거운 태양은 포도에 좋은 당분과 색깔을 가져다주고, 밤 시간의 차가운 기온은 좋은 와인 만들기에 적합한 산도를 가져다 준다.

캘리포니아에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769년으로, 지금부터 240년 전의 일이다. 이후 캐리포니아 와인 산업은 급성장을 거듭했지만 19세기 말 창궐한 포도나무 전염병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게다가 1919년부터 발효된 금주법은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에 괴멸적인 타격을 가하게 됐다.

1933년 금주법은 폐지되었지만 캘리포니아 와인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때 사람들은 약간 단맛이 나는 저급 와인을 선호했고 와인 생산자는 품질을 등한시하고 와인의 생산량 증가에만 힘을 쏟게 됐다. 이때부터 캘리포니아 와인하면 싸구려 저급 와인이란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로버트 몬다비
1960년대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부흥을 일구는 시작이었고 그 중심에는 ‘로버트 몬다비’라는 인물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된 그는 자신의 나이 53세에 자신의 새로운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좋은 와인 만들기에 열중했다. 이에 자극받은 다른 많은 와이너리는 좀더 고급 와인 만들기에 주력했고, 그 결과 1976년 ‘파리의 심판’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파리의 심판’이란 1976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의 최고 와인 비교시음회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이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모두 프랑스 최고 와인을 누르고 일등상을 타게 된 일로 타임스 기자인 조지 테이버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 와인은 하룻밤 사이에 국제 와인비평가에 의해 세계 최고의 와인 생산지역의 하나로 인정받게 됐다.

이후 1970년대 후반에는 ‘인시그니아’ ‘오퍼스 원’ 등 국제적으로 명품 반열에 드는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그 누구도 캘리포니아 와인을 싸구려 와인이라 생각하지 않게 됐다. 

실버라도 까베르네소비뇽, 부에나비스타 피노누아, 초크힐 샤르도네 <사진 왼쪽부터>
현재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질좋은 캘리포니아 와인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실버라도(Silverado) 빈야드다. 1981년 설립된 와이너리로 캘리포니아 와인이 한창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때 만들어진 와이너리다. 와이너리 이름은 주변에 있는 은광산에서 유래했으며, 나파밸리에서도 좋은 와인산지(테루아)로 인정받고 있는 스태그스 립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1986년 월트디즈니가(家)에서 인수해 현재 월트디즈니의 딸 부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면세점에 가면 실버라도 와인을 산처럼 쌓아놓고 판매하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 같은 광경을 목격한 우리나라 소비자가 국내에 들어와서 실버라도 와인을 찾기도 한다. 일본의 유명한 와인 만화인 ‘신의 물방울’에 소개되기도 했다.

부에나비스타(Buena Vista) 와이너리도 훌륭하다. 부에나비스타는 스페인어로 훌륭한 전경(good view)을 뜻한다. 이 와이너리는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의 카네로스에 위치하고 있다. 1857년 설립된 부에나비스타는 캘리포니아 전 지역을 통틀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프리미엄 와이너리다.

카네로스는 소노마 카운티와 나파밸리의 남쪽 끝자락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샌파블로만(San Pablo Bay)에서 불어오는 해양풍으로 인해 두 지역을 통틀어 가장 서늘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이런 기후 덕분에 카네로스는 최상급 피노누아와 샤르도네를 생산하는 곳으로 오래 전부터 명성을 떨쳐왔으며, 근래 들어서는 온화한 기후를 지닌 곳도 빈야드로 많이 개간돼 시라, 메를로 등도 높은 품질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초크힐(Chalk Hill) 와이너리가 있다. 소노마 카운티의 초크 힐에 위치한 초크힐 와이너리는 프레드릭 퍼스에 의해 1969년 설립됐다.

초크 힐은 소노마 카운티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러시안 리버 밸리(Russian River Valley), 알렉산더 밸리(Alexsander Valley), 나이츠 밸리(Knight’s Valley) 등과 접해 있다.

이 지역은 백악질(chalk)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화산 분출과 함께 형성된 규암(quartzite)이 토양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이런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포도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내리게 돼 다양한 향과 맛을 지닌 양질의 포도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초크힐 와이너리는 특히 풍부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샤르도네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거의 매년 로버트 파커나 와인 스펙테이터 등으로부터 90점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늘날 캘리포니아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세계적으로 4번째로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 됐다. 그 규모는 연간 25억병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 칠레, 이탈리아에 이어 역시 4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것이 미국 와인, 즉 캘리포니아 와인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와인 만들기에 매진한 캘리포니아 와인은 그 노력의 대가로 이제는 세계 최고급 와인 산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가끔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경을 핑계로 싸구려 저급와인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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