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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종 DNA’의 두얼굴...자율과 타율의 그 극명한 차이
뉴스종합| 2011-04-13 10:42
불과 석달새 4명의 카이스트 영재가 자살했다. 성적이 나쁘면 돈을 더 내고, 소정의 이수기간을 넘기면 ‘할증’등록금을 내게하는 개혁제도가 ‘개혁’의 도마위에 올랐다.

최적의 경쟁구조를 도모하려는 서남표식 ‘독종’키우기 마인드는 학우 4명을 잃은뒤 외면당하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 정치권도 ‘도그 레이스(dog race)’에 내몰린 학생들을 동정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던 ‘경쟁’키워드와 한국을 다른 선진국보다 5~10배 빠르게 정상권의 반열에 올려놓은 ‘독종DNA’가 도전을 받는 듯한 양상이다. 선의의 경쟁과 목표를 향한 독종DNA는 발전과 진보의 에너지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먼저 독종 DNA가 잘 발현된 경우를 보자.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 교수는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대하는 날도 잊은 채 밤새워 백신을 개발하고 허겁지겁 군대에 가느라 가족들에게 인사도 못했다”고 말해 감동을 전했다.

‘경기고 3대 천재’로 통하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연구하는 중앙은행을 목표로 평소 “사흘 밤낮 술, 담배를 하면 죽게 되겠지만 사흘 밤낮 공부만 하면 죽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올초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독종 DNA’를 되찾아 LG전자의 기본 다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고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은 기업개선 돌입후 3년간 주말도 없이 직원들과 자장면 먹으며 죽을만큼 일해 9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올해는 매출 3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선포했다.

독(毒)이 양면성을 지니듯 독종 DNA도 마찬가지다. 서 총장은 지난 4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많은 학생들은 명문대학으로 진학해 자신보다 더 나은 학생들과 경쟁하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제자 4명의 죽음 앞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성패와 생사의 갈림길에는 무엇이 작용했을까.

전문가들은 ‘착한’ 독종 DNA는 경쟁이 발전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율적 경쟁을 강조했다. 신 교수는 “자율적 경쟁은 경쟁의 룰을 선택하든, 최소한 룰을 정하는데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며 “극소수의 스타에게 보상을 몰아주고 대다수는 패자로 규정하는 한국적 경쟁의 룰은 절망감과 패배의 체험을 대물림하며 갖가지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서 총장을 ‘살아남기 위해 공부한 헝그리 제네레이션’이라고 규정한다. 먹고 살만하며 공부를 즐기는 젊은 세대들에게 본인이 경험한 혹독함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정해놓은 학점 이하는 루저(loser)로 낙인찍고 매년 논문 몇편 이상을 써야 교수로 인정하는 서남표식 개혁은 그가 자라던 시대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학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라며 “타의적인 옥죄기 환경에서 학생 본인이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돈’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을 했고 자포자기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와 박병엽의 성공담은 자발적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아울러 타율적 ‘인재 제조’ 시스템은 천재를 둔재로 만들 우려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려 ‘돈’을 매개로 학문적 성숙을 끌어내려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 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옛부터 우리 민족은 덕이 있는 사람인데, 어느때부터인가 경쟁논리가 지나치게 강조된 측면이 있다”면서 “자기주도형의 목표추구때 어느나라보다 큰 효율을 발휘한 한국민의 특성을 잘 고려해서 목표추구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정일 기자/ ry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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