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패션
느리고 부드럽게…에코패션 돌아왔다
라이프| 2011-04-25 09:40
쪽·감·진흙 물들인 옷

식물성 타닌 가공한 가방

자투리 모시 이용한 브로치…

친환경 브랜드 속속 등장

가공방식 번거롭지만

환경오염 최소화·빈티지 느낌

소비자들 반응도‘ 굿’





지축이 거세게 흔들렸고 바다에서는 큰 파도가 몰려왔다. 바벨탑처럼 쌓아올린 문명의 세상은 쉽사리 무너졌다.

지난달 일어난 일본 대지진은 인류에 자연의 초월적 힘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상기시켜줬다. 다시 평화가 왔지만 예전과 똑같은 평화는 아니다. 지난 5일은 식목일,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환경 오염이 일련의 기상 이변이나 재앙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어머니 같은 자연의 소중함을 재고해볼 수 있는 요즘이다.

오랫동안 패션은 환경의 적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 제조 시스템의 정착과 화학의 비약적 발전은 패션을 잉태하는 ‘자궁’인 소재에 혁명을 가져왔다. 석유 화학의 산물인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옷감이나 화학 약품을 이용한 가공 처리 등으로 패션은 기능성을 더하며 화려함을 뽐내왔다.

‘에코 패션’은 반작용이다. 공업 원료와 공정의 대량 생산 대신 자연 속에서 재료를 얻고 모방한다.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느린 패션’이지만, 오히려 ‘빠른 패션’이 흉내낼 수 없는 독창성을 지녀 환경뿐 아니라 소비자의 시각과 촉각에도 만족감을 안긴다.

▶쪽과 감의 귀환=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있다. 옛사람들은 한해살이 풀인 쪽에서 파란색 염료를 얻었는데, 이것이 원료인 쪽 그 자체보다 파랬다. 지금은 다양한 화학 염료로 ‘코발트빛 블루’처럼 더 진한 파랑도 쉽게 얻게 됐지만 쪽물이 주는 맛은 훨씬 깊다.

자연 염색한 제품은 그 색감이 부드럽다. 이른바 ‘쨍’하지 않다. 되바라지거나 진하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애시드컬러(형광빛)를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만큼 자연스럽고 은은한 색은 화학 염료가 흉내내기 힘든 부분이다.

옛사람들은 주황빛도 과일인 감에서 얻었는데 이런 방식도 다시 귀환했다. 감 염색은 덜 익은 감을 이용하는데 제주도나 해안 도서 지방에서 널리 쓰였던 기법. 진흙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황톳빛을 내기도 한다.

자연 염색은 공정이 간단치 않다. 원료에서 염료를 추출하고 이를 이용해 염색된 천을 일일이 자연광에 내다 말리는 등 번거로운 작업이 뒤따른다. 감, 쪽, 진흙 염색으로 의류를 만드는 친환경 브랜드 ‘이새’ 관계자는 “천연 염색된 천은 원래 색감이 진하지 않아 기계로 인공 건조하면 색감이 너무 옅어지는 등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고 전했다.

가공 과정에서 중금속이나 화학 약품 대신 식물성 성분을 채택한 제품도 있다. ‘베지터블 레더’가 대표적. 양가죽이나 소가죽을 기본 소재로 하되 가공할 때 화학성분을 배제한다. 중금속의 일종인 크롬 대신 식물성 성분인 타닌을 이용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고 있다. 가방 브랜드 ‘라비엔코’ 관계자는 “베지터블 레더는 매끈하지 않은 대신 오랜 세월 길들인 듯 자연스럽고 빈티지한 느낌이 잘 살아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면도 환경을 해친다…‘오가닉 코튼’
=손쉽게 접하는 100% 면 제품도 100% 친환경은 아니다. 면의 원료인 목화를 기를 때 다량의 방충제와 제초제 등이 사용되는데 그것이 그대로 땅에 흡수되고 강물로 유입돼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된다. 오가닉 코튼은 면의 대체 섬유다. 3년 이상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밭에서 사람의 손으로 잡초를 제거하고 살충제 대신 천적 곤충을 활용해 만들어지는 친환경 소재다. 면 소재 의류는 살에 직접 닿는 경우가 많은데 오가닉 코튼은 피부에 편안하고 트러블이 안 생겨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이나 민감한 어른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새에서 처음 의류에 상용화한 케나프는 마의 일종으로서 비료나 농약 대신 물로만 재배할 수 있고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해 면 섬유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닥나무에서 얻은 섬유질을 꼬아 만든 한지섬유는 별도 가공 없이도 세균이나 냄새 억제력이 좋고 온도와 습도를 스스로 조절해 계절의 변화가 많은 우리나라에 적합한 소재다. 트로아의 한송 디자이너는 한지섬유에 천연 염색을 더해 기존 데님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신개념 한지 데님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 ‘자투리 옷감으로 브로치를…재활용 패션=버려지는 ‘옷감 쓰레기’도 환경을 해친다. 지난 2009년,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딸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스텔라 매카트니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찾은 에코 컬렉션을 선보여 반향을 일으켰다. 옷감을 재단해 쓰지 않고 접기 방식을 이용해 낭비되는 부분을 최소화했다.

최근 등장한 ‘업사이클링(up-cycling)’은 재사용ㆍ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에서 진일보한 개념이다. 버리는 것을 해체해 아이디어나 디자인을 불어 넣어 전혀 새로운 의류나 소품으로 업그레이드해내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 리블랭크는 남은 옷감뿐 아니라 폐현수막까지 재활용해 새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만다리나덕은 페트병에서 추출한 소재를 사용한 가방을 내놓기도 했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종이지갑·재활용 슬리퍼…소품도 ‘에코 프렌들리’


얼핏 생각하면 친환경과 연관 짓기 어려운 지갑이나 슬리퍼 같은 제품에도 ‘에코(eco)’ 바람이 거세다.

종이로 만든 지갑이 있다. 소꿉장난이 아니다. 페이퍼 월릿(Paper Wallet)은 브랜드 이름에서부터 ‘종이 지갑’을 기치로 걸었다. 소재는 ‘타이벡(Tyvek)’. 내구성과 물방울 저항력을 지닌 얇은 재생 종이다. 이를 접어 지갑을 만들면 작지만 튼튼하고 가벼운 종이 지갑이 된다. 프랑스 파리의 ‘콜레트’를 비롯해 많은 멀티숍에서 선보이는 제품인데 최근 국내에도 멀티숍 ‘플랫폼 플레이스’를 통해 들어왔다.

특히 이 가운데 프랑스, 러시아, 미국,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Designer’ 라인 제품들(3만3000원)은 친환경에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면모를 더했다.

쉽게 신고 버리는 슬리퍼에도 재활용 소재가 인기다. 미국의 ‘오카바시(OKABASHI)’는 100% 재활용 소재를 이용해 만든다. 다른 재료와 혼합되지 않고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소재인 ‘마이크로플라스트(Microplast)’다. 부드럽고 내구성이 강한 것이 특징. 오카바시는 낡은 제품들을 수거해 오염 물질을 검사한 후 오염이 없는 제품들은 재공정을 거쳐 새 제품으로 만들어낸다. 이런 재활용 방식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매년 전체 생산량의 25%에 달한다. 지난 2006년 미국 지압연합회에서 승인을 받으며 발 건강에 대한 기능성도 입증했다. 미국 내에서 3000만 족 이상의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최근 국내에도 들어왔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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