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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변신 윤석화 “진부한 역사극에 마술을 부렸죠”
엔터테인먼트| 2011-05-19 06:53
“야야야! 스크린 똑바로 안 섰잖아. 음악도 올리고. 이거 이거 정신 안 차려?”

쩌렁쩌렁한 호통이 극장 안을 가득 채운다. 배우도 스태프도 긴장을 놓지 못하는 연극 무대. 공연 4일을 앞두고 리허설을 진행 중인 연출이 날 선 디렉팅을 쏟아낸다. 무대 위에 폴짝 올라가 다정다감하게 배우에게 조언하다가도, 뭐 하나 삐끗 하는 순간엔 섬뜩한 불호령이 떨어진다.

지난 36년간 배우로서 보여준 열정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다 쏟아가며 작품을 만드는 연출가. 연극 ‘나는 너다’를 진두지휘 중인 연출가 윤석화(55)를 지난 13일 만났다.

지난해 ‘나는 너다’로 연극계 새 바람을 일으킨 윤석화는 오는 17일부터 같은 작품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올린다. 작품 연출을 위해 현재 거주 중인 영국 런던에서 일시 귀국했다는 윤석화는 “제 연출료보다 비행기 값이 몇 배 더 들고 있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까칠함과 다정다감 사이= ‘나는 너다’는 영웅 안중근의 삶과 그 뒤에 가려진 영웅의 아들 안준생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작품.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 이어 ‘예술의 전당 명품연극’ 두 번째 작품으로 선정되면서,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공연을 코 앞에 둔 마지막 주말. 평생 연극쟁이로 살아온 윤석화에게도 잠 못 이룰 긴장감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며칠 전만 해도 밤에 잠도 못 자고 고민도 많이 했는데, 이제 한시름 놓기로 했어요. (공연 나흘 전) 포기할 건 포기해야죠.(웃음) 현장에 오면 연출로서 의연하고 담대하고, 기개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돌아서선 늘 고민하고 걱정해요. 연극이라는 게 배우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스태프만의 것도 아니니까. 연출은 이 모든 것을 사령관처럼 때로는 오케스트라 마에스트로처럼 화음을 만들어야 해요.”

우리에게 배우로 익숙한 그가 연출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무대 위의 배우, 그 뒤편의 모습은 어떨까.

“두 가지가 다 있죠. 까칠하면서도 다정다감해요. 연습할 때는 무섭다기보다 까칠하고요. 멀쩡하게 잘 해주다가도 느닷없이 콱 질러대기도 하니까. 근데 때로 까칠한 모습조차 연출일 때가 있어요. 배우의 입장을 생각해서 다양한 루트로 메시지를 전하죠. 하지만 연습이 끝난 뒤 사석에서는 그 누구보다 편하게 대해요. 제가 좀 까칠하긴 해도 얼마나 우리 배우들을 사랑하는가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할걸요.”

▶디테일 보완, 품질 업그레이드=이번 공연은 지난해 올렸던 작품을 다듬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초연 시 연극에 세계 최초로 활용된 입체영상 기술 ‘하이퍼 파사드(hyper facade:건축물을 비롯한 각종 구조물 표면을 입체적으로 스캐닝해 영상 제작하는 기법)’의 적용에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배우들의 연기, 무대 위 디테일한 부분의 보완에 집중했다. 공연장도 다른 곳(예술의전당 토월극장)으로 옮기면서, 무대, 조명 및 배우들 동선도 공연장 구조에 맞춰 변화를 줬다.

작품은 역사 속 인물인 안중근에 대한 색다른 해석, 진부함을 깬 박진감 넘치는 무대로 기존 영웅전과 다른 매력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특히 스크린 위에 집을 만들고 창문을 여닫는 등 화려한 입체 영상은 연극의 지루함을 깨부쉈다.

“역사극은 진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마술이 필요했어요. 역사를 ‘아날로그’라고 한다면, 역사를 풀어내는 형식은 디지털(입체영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또 기존 영웅전을 답습하면 너무 진부하니까, 단순히 영웅의 스토리가 아닌 그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를 고민했어요.”

‘덕혜옹주’ ‘명성황후’ ‘나 김수임’ ‘영영이별 영이별’ 등 다양한 역사극과 인연을 맺어온 그는 “‘우리는 왜 스스로 모멸해서 우리의 것(역사)을 버리는가’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찌그러지고 모난 역사라고 해도 승화시키면 아름다운 거울이 될 수 있다”고 평소 역사관을 덧붙였다.



▶ ‘스타’ 송일국을 배우로=이 작품은 연출가인 윤석화가 한 번도 연극을 해보지 않았던 ‘연극 초짜’ 송일국을 캐스팅한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송일국은 극중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준생 역을 1인 2역으로 맡았다. 그리고 우려와 달리, TV스타라는 편견을 씻어내고 연극 무대 위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윤석화도 그를 캐스팅할 수 있을거라 생각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캐스팅 제의를 할 엄두가 안 났어요. 워낙 스타고 바쁠테고. 게다가 연극을 한 번도 안 해본 친구기 때문에 ‘하겠어?’ 하는 생각, 솔직히 너무 다른 동네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 ‘송일국이 김좌진 장군의 증손자, 김두한 장군의 손자고,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피가 흐르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그렇다면 스타를 떠나서 그는 이 작품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캐스팅할 의지가 생겼어요.”

송일국은 장고 끝에 생애 첫 연극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연극 무대에 서서히 적응하며 성실하게 연기를 쌓아나갔다. 윤석화는 처음에 송일국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서 답답하게 들리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했다. 하지만 연출가이자 선배 배우인 윤석화의 연기 지도를 거치면서 송일국은 연극 발성부터 감정표현까지 많은 부분에서 발전했다.






“제가 연출에서 남다른 장점이 있다면, 배우를 길러내는 데 자신이 있다는 거죠.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하는지, 표현을 위해 발성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어요. 처음엔 (송일국이) 발성이 잘 되지 않았는데 이젠 뻥뻥 터져서, 되레 제가 눌러야 할 정도로 정말 잘해요.”

윤석화의 새로운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배우이자 두 아이의 엄마,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의 대표, 문화월간지 ‘객석’의 발행인, 그리고 연출까지. 연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연극쟁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진화는 끝이 없다. 



“연출은 늘 외로워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것들도 있고요. 안 해보면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연출 말을 잘듣는 배우가 될 거예요.(웃음)”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연극 ‘나는 너다’/5월 17일~6월 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지난해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초연된 역사극으로 올해 앙코르 공연된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와 평범한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묻어둬야만 했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애틋하게 담아낸다. 송일국이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준생 역을 1인 2역으로 맡고, 박정자가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으로 출연한다.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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