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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다
뉴스종합| 2011-06-17 11:46
공정사회는 신기루였나. 최근 잇따라 터지는 정ㆍ재계 비리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끝인가 하니 하루에 한 건씩 터져나온다. ‘대한민국이 썩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결국 재계 총수는 물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렴결백하게 사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여기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어렵다는 공직사회에서도 깨끗한 관리는 있다.

정부로부터 지난해 10월 제34회 청백리상을 수상한 공직자들이다. 이들은 원칙과 신념을 지키면서도 융통성 있게 일 잘할 수 있다고 일갈한다. 공정하기 힘든(?) 사회, 이들 4명으로부터 대한민국에서 청렴결백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들어봤다.

▶“뇌물은 받아도 되는 게 아니다. 무조건 받으면 안 된다!”=서울시 강남구청 교통정책과에 근무하는 김종삼(44ㆍ행정 7급) 씨는 돈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로 공직생활 20년째인 김 씨는 “돈은 절대 10원도 받으면 안 된다. 이건 내 불변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위에 뇌물받아서 처벌받는 동료들 보면 처음 한 번이 무섭더라. 그들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한 번 무너지니 그다음은 습관화된 거더라”며 부패 동료들을 되레 ‘타산지석’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의는 무시하지 말아 달라는 사람들까지 거부하긴 쉽지 않다. 그는 “거절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면서 “받으면 도움되지만 이거 하나 받으면 나중에 안 받아도 될 것까지 받게 된다. 이해해 달라”고 우선 정중히 거절한 뒤 “정 주고 싶으면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라”고 한단다.

내부 청탁도 “이것은 이런 점을 보완해야지 청탁으로 극복하면 안 된다”며 대신 해법을 제시한다고 했다. 김 씨는 “처음엔 너만 튀게 왜 그러냐는 동료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편해졌다”면서 “처음이 힘들지 원칙을 지키고 사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며 웃음을 지었다. 

▶“해결사가 아니라 도우미가 되라
”=3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퇴직을 2년 남짓 남겨둔 임종대(58ㆍ경북 행정 6급) 씨는 사람들이 유혹에 무너지는 까닭에 대해 “자신이 일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꼭 일을 ‘해결’해줘야 대민 서비스를 잘하는 게 아니다”며 “원칙과 본분을 지키면서도 대민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바로 해결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대부분 해결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뇌물과 청탁을 이용하는 것”이라면서 “가령 농지매입 가능하게 해달라는 청탁에는 안 되는 이유와 농지매입이 가능한 다른 지역과 농지매입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식으로 대처한다”고 자신의 거절 노하우를 털어놨다. 처음엔 불쾌해하던 이들도 나중엔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돌린단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는 없다. 되면 다 되고 안 되면 다 안 된다’는 신조로 일해온 그에게도 난감한 상황은 있다. 바로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와서 부탁을 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럴 경우도 예외는 없다. 귀가 어두운 어르신에 맞춰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밖에. 임 씨는 “공직생활이 2년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후회는 전혀 없다”면서 “저 사람 괜찮다”란 평가를 듣고 퇴임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 “유혹을 느낄 땐 자식을 생각하라”=제주시 아라동 주민센터장인 김영문(55ㆍ제주시설 6급) 씨는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자신은 그냥 공직자란 본분에 맞춰 사는 것뿐인데 대단한 사람인 양 칭찬받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씨는 “공무원이 처음 됐을 때 세운 원칙이 있었다. 바로 내 자식들에겐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는 거였다”면서 “인간으로서 간혹 흔들릴 때도 이 결심을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를 지켜왔다. 그리곤 생활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제주도는 지역사회가 좁아 비리가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절대 아니다. 더 잘 눈에 띈다”면서 “가족처럼 어우러져 있는 사회이다 보니 자식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공직자가 되자는 생각에 더욱 청렴하게 살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청탁과 뇌물 없는 인맥관리의 비법은 뭘까. 그는 “사람을 대할 때 내가 진실한 마음을 지니면 상대방도 날 편하고 진정으로 대해준다”면서 “뇌물로 유혹하거나 청탁 넣으려던 사람도 결국 스스로 포기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 “봉급이 적으면 적은 대로 살면 된다. 공무원 아닌가”=김영래(57ㆍ전북 공업 6급) 씨는 “본분에 넘치는 욕심을 버리면 유혹에서 초연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김 씨는 “검은 유혹에 흔들리는 것은 결국 개인의 욕심 때문”이라며 “공무원 월급이 박봉이면 박봉에 맞춰 살면 된다. 처음부터 공무원 월급이 박봉인 거 모르고 된 건 아니지 않나”고 되물었다. 그는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잘 알고 있기에 나름 깨끗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며 “부탁을 안 들어주면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말 안 해도 해주고, 안 해야 할 일은 부탁해도 안 해주는 것이 맞다”고 강한 소신을 전했다.

그래도 인맥관리가 될까. 그는 자신의 인맥관리 비법으로 ‘생각 나면 전화하기’를 꼽았다. 김 씨는 “무슨 때만 되면 전화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생각 나면 전화 한 통 해서 안부를 묻는다”면서 “돈 들지 않고 간단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크게 감동한다”며 미소 지었다.

사회부/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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