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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여성에 희망의 빛 ‘1366’ 10년
뉴스종합| 2011-07-06 09:44
참는건 미덕 아니다

여성 사회진출 영향

피해신고 적극적

물리적 학대 처벌우려

정서적 학대 증가추세

가정폭력 대물림 차단

가해·피해자 지속상담

사후관리로 재발 방지




#정신지체 3급인 구영옥(38ㆍ여ㆍ가명) 씨는 지난 2007년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시각장애 1급인 남편의 계속되는 가정폭력은 구 씨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남편의 폭력은 4명의 아들 딸에게까지 이어졌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집안에 물건을 던지고 아이들까지 때렸다. 발육 저하인 둘째아들은 남편에 의해 화장실에 끌려가 목까지 졸리곤 했다. 배변 장애를 앓는 9살 막내아들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때렸다. 구 씨에겐 집앞 슈퍼도 가지 못하게 하는 등 감금 아닌 감금을 가했다. 구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나왔다가 갈 곳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지옥 같은 일상이 계속됐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악몽이 끝나게 된 건 지역 청소년상담지원센터를 통해 알게 된 여성긴급전화 1366의 도움 때문이었다.

전화로 신고를 접수했고 현장상담원이 구 씨 가족을 직접 방문했다. 가해자인 아버지와 아이들의 신속한 분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긴급피난처로 구 씨와 아이들이 피신했고 남편은 경찰에 고소됐다. 지자체와 장애인 쉼터 등과 연계해 구 씨 가족이 심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쉼터도 마련했다. 1년 정도가 지난 이후 남편은 가족에게 돌아왔다. 완벽히 나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무차별적인 폭력은 사라졌다. 지역 장애인 쉼터와 기관에서 전화 상담 등을 통해 구 씨 가족에 대한 후속 관리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올해로 10살 된 여성긴급 전화 1366=‘여성긴급전화 1366’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났다. 가정폭력ㆍ성폭력ㆍ성매매 등 위기상황에 처한 여성들에게 전화상담을 통해 긴급보호를 실시하며 전문상담기관 및 의료ㆍ보호시설과 사법기관, 행정기관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즉각적이고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스톱 보호망이다. 1998년 보건복지부 산하 상담기관에서 2001년 여성부로 이관되면서 위탁 상담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현재 서울 경기 경남 경북 광주 대구 대전 부산 등 전국 17개 센터가 365일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44만945건. 지난 10년 동안 여성긴급전화 1366에 제출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다. 전국 16개 지부에서 2001년부터 2010년 12월까지 접수한 전체 신고건수(149만9966건)의 약 30%에 달하는 수치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 우울증, 경제적 어려움 등은 따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포괄적인 가정폭력까지 따지면 훨씬 많다.

2001년 1만5786건에 불과하던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2010년 12월 기준 6만489건으로 약 4배 증가했다. 2001년에는 전체 신고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5%였지만 2010년에는 33.3%까지 늘어났다. 사회는 선진화되고 기술은 발전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가정 폭력이라는 암울한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는 의미다. 센터별로 2명의 면접상담원이 상주하며 3교대로 24시간 상담을 받는다. 또한 현장상담원은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현장에 직접 찾아가 상담을 진행하고 상담자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후속 조치를 취한다. 


▶신체적 학대와 함께 정서적 학대 증가
=1366센터의 지난 10년간 상담 사례 및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우선은 신체폭력과 함께 정서 폭력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지난 2007~2010년에 발생한 가정 폭력 중 신체적 학대는 18만431건(81.2%), 정서적 학대는 3만1129건(14.8%)을 차지했다. 비율은 작은 편이지만 1366센터 설립 초창기에는 정서적 학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없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신체적인 학대 등 눈에 보이는 폭력은 아주 강해지거나 경미해졌고 정서적 폭력은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변현주 여성긴급전화1366센터 전국협의회 부회장은 “신체적인 폭력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사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최근에는 정서적 폭력이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주여성ㆍ50~60대 중년여성 대상 폭력 증가=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들 중 이주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커졌다. 다문화사회의 이면이다. 지난 10년 동안 1366센터에서 진행한 외국인 상담 건수는 모두 4만538건. 이 중 가정폭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2만6000여건으로 전체의 62.1%를 차지한다. 이주여성 피해 상담만 전문으로 하는 이주여성 긴급전화(1577-1366)가 생긴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이 외에도 50~60대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정 폭력이 증가하는 것도 큰 특징이다. 가정폭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변화했다는 반증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변 부회장은 “기존의 한국 문화와 정서 안에서는 배우자에 의한 가정폭력을 참아왔다. 하지만 이젠 참지 않고 드러내기 시작한 것. 인식이 변한 것이다. 사회에 진출해 결혼을 한 자녀를 둔 중년 여성들의 신고 접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폭력의 대물림…새로운 가정에서도 계속되다=가정폭력에 의해 가족이 해체된 이후 새롭게 탄생한 가정에서도 폭력이 이어지는 현상도 최근 들어 눈에 띄는 특성이다. 남편의 가정 폭력으로 인해 자녀와 가출해 이룬 한부모 가정에서는 자녀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어머니가, 재혼을 한 가정에서는 재혼한 남편에 의해 폭행을 당하는 아내가 나타나는 실정이다.

변 부회장은 원인을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부모가정에서 자녀가 부모를 폭행하는 일은 가정이 해체된 것에 대한 원망과 여유롭지 못한 가정환경에 대한 분노에서 기인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변 부회장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자녀와 둘만의 가정을 꾸렸는데 자녀가 그동안 보고 배운 폭력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런 경우는 나중에 자녀가 결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도 다시 발생할 수 있어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변현주 경기센터장 인터뷰

“가정폭력 예방위해선

초기개입·지속관리 중요”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 전국협의회 부회장이자 1366경기센터장을 맡고 있는 변현주(44) 부회장은 다양한 형태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가정폭력을 막기 위해선 ‘초기 개입’과 ‘지속적인 상담’ 등의 후속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 일답. 

-하루에 몇 건의 상담을 진행하는가.

▶평균적으로 하루에 60건 정도다. 많은 날은 100건이 훌쩍 넘을 때도 있다. 한 달 평균 1800건 정도의 전화상담이 이뤄진다. 경기센터에서만 1년에 2만2000여건의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어떤 유형의 가정폭력이 주로 접수되는가.

▶가정폭력은 복합적인 폭력이다. 신체적ㆍ언어적ㆍ정서적 폭력까지 모두 포함한다. 최근에는 정서적인 폭력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내를 옆에 두고 직접적인 외도를 하는 것은 정서적 폭력이다. 이런 이유로 우울증에 빠지는 등 피해를 입게 되면 신체적 학대와는 달리 처벌이 쉽지 않다. 가정폭력 대책안에 정서적 폭력에 대한 대책이 꼭 포함돼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이 있다면.

▶앞서 말했던 정서적 폭력의 피해자가 결국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7월 경기도 안산에서 남편의 지속적인 외도와 일부 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있던 여성이 있었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후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그 여성을 만나 상담을 진행했다. 그 여성이 하는 말이 “난 남편을 떠나서 살 수 없는 현실이었다.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지만 내가 직접 신고할 수 없었다. 내가 그런 피해를 당하는 것을 알았다면 경찰이나 정부가 알아서 그 사람을 처벌해주길 바랐다. 그랬으면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하더라. 친고죄의 문제인 셈이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가정 폭력 줄이기 위한 대안은.

▶초기 개입이 중요하다. 경찰의 개입도 초기에 이뤄져야 한다. 또한 가해자 상담 프로그램과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 프로그램이 모두 함께 이뤄져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사례 관리시스템도 필요하다. 지속적인 후속 관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지역 내 가정폭력상담소의 경우 부족한 인력 등으로 이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1366센터에서 초기 상담 및 지역사회와 연계를 진행하면 이후엔 지역 상담소에서 지속적인 상담이 이뤄져야 한다. 가정폭력이 복합적이고 다양한 만큼 이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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