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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 뒤흔드는 국제 신평사
뉴스종합| 2011-07-18 10:24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의 서슬퍼런 칼날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고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의 그리스 민간 채권자들에 대한 채무 만기연장 차환(롤오버) 협상이 시작되자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푸어스(S&P)가 이럴 경우 그리스 국채를 선택적 디폴트(채무불이행)으로 간주하겠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또다른 신평사인 무디스는 그리스 민간 투자자 손해 우려를 이유로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을 모두 정크(투자 부적격)으로 강등하며 경고했다.

결국 신평사들의 서슬에 지난주 긴급 회동을 거듭한 EU의 수뇌부와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그리스에 대한 채권 연장 차환 해법을 사실상 포기했다.

국제신평사들의 이어진 정크 강등에 다음 차례는 이탈리아 스페인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신평사들은 미국 백악관과 야당인 공화당의 8월2일의 국가 부도 위기를 놓고 벌이는 치킨게임에도 훈수를 두고있다. S&P에 이어 무디스가 지난주 연방정부 재정적자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세계 최우량인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겠다고 경고했다.

그야말로 민간 기업인 신평사들이 유로존 재정위기와 미국 연방정부 디폴트 위기에 전면에 나서 칼을 휘두르고있는 셈이다.

무디스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미국의 국채 가격은 오히려 올라 월가에서는 같은 동네 이웃인 무디스의 경고를 워싱턴 정치권을 향한 합의 촉구 수준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유로존은 죽을 맛이다.

지난주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는 정크 등급을 받자 다음날 바로 국채 금리가 1%P이상 치솟는등 재정위기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는 사상 최고치를 치달았다. 이들은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국가 채무가 하루만에 수십억 유로가 불어났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신평사들을 향해 “유로존의 일에 뒤에 물러나 있으라”고 경고하고 재무장관이 “신평사들의 독과점을 부숴야한다”고 울분을 터뜨렸지만 이들의 연이은 강등에 결국 EU의 그리스 해법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사실 개도국은 이미 세계 신용평가 시장의 95%를 장악한 월가의 S&P, 무디스, 피치 이들 이른바 빅3가 휘두른 칼날에 국가 존망이 오락가락했던 아픔이 있다.

지난 80년대 남미와 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도 신평사들은 외환위기 조짐이 보이는 국가 신용등급을 줄줄이 강등시키면서 해외투자금 탈출로 결국 외환위기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고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신평사들이 위기에 빠진 나라들의 숨통을 더 조였다는 개도국들의 원성은 국제금융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개도국이 따라야한다는 논리에 묻혔다. 빅3 신평사들의 신용평가는 곧 금융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클린턴 미행정부의 금융시장 개방 정책과 세계화가 진행돼고 국제 금융의 표준인 바젤 협약이 발효되면서 신평사들의 등급 판정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위한 전제 조건이자 국가와 민간 기업의 돈줄을 지배하는 메커니즘이 됐다.

최근 신평사들의 서슬퍼런 칼질에 대해 지난 2008년 월가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라더스에게 파산 전날까지도 우량 등급을 유지했다가 금이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미의회 조사에서는 S&P의 직원이 이메일에서 월가 금융위기의 주범인 고위험 주택담보대출 파생 상품(CDO)에 대해 “소가 만들었어도 등급을 줘야했다”면서 “돈이나 많이 벌어 빨리 은퇴하자”고 말한게 드러나 공분을 자아내기도했다.

지난 1909년 미국에서 무디스를 설립한 존 무디는 당시 고위험 철도건설 채권에 대한 엄정한 평가로 1929년 증시 대폭락에 진가를 발휘하면서 무디스를 정부기구 못지않은 신용평가기관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린채 너무나 커져버린 무소불위의 신평사들은 이제 금융시장의 안전판이 아니라 뇌관이 됐다.

고지희 기자/j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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