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영화가 끝나면 진짜무대가 시작된다”
엔터테인먼트| 2011-07-25 10:19
백현진·구자홍과 공동작업

27~30일 LIG아트홀서 즉흥공연

“입맛 맞추는 기존 영화음악 식상

하고싶은대로 하는 장기하 좋아”




‘황해’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타짜’ ‘달콤한 인생’ ‘4인용 식탁’ ‘얼굴없는 미녀’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 최근의 ‘고지전’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 작곡가 장영규는 사실 한국 음악계의 ‘전위’로 불린다.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해 국내 음악계에 ‘폭탄’을 던진 전위음악 그룹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 달파란, 방준석, 이병훈과 함께 영화음악 창작집단 ‘복숭아’를 구성해 함께 또는 혼자, 위에 나열된 것을 포함해 많은 영화의 음악을 만들었다. 2008년부터는 한국 음악 프로젝트 ‘비빙’의 음악감독으로 불교음악, 궁중음악까지 독특하게 재해석했다. 안은미(안무가) 컴퍼니의 음악감독으로 숱한 무용음악과 연극음악도 빚어냈다.

그의 음악엔 경계가 없다. 의미 없는 소리의 단편부터 동서양 음악의 갖가지 방법론까지 팔레트에 담았다가 때론 감성적인, 때론 예측 불가한 사운드로 분출해낸다. 자의식 강한 영화감독, 안무가, 음악가들이 앞다퉈 그에게 손 내미는 이유다.

장영규가 요즘 새로운 꿍꿍이셈에 빠졌다.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여는 특별한 공연 때문이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오랜 동료인 보컬 겸 아티스트 백현진, 영화감독 구자홍과 함께 두 편의 영화와 음악을 공동 작업해 서울 역삼동 LIG아트홀 무대에 올린다. 이름하여 영화+음악 프로젝트 ‘들리는 빛’.

이번엔 또 어떤 해괴한 실험으로 뒤통수를 칠까.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길고 풍성한 머리칼 아래로 윤기 나는 흰 피부에 쌍꺼풀 진한, 깊은 눈을 빛내며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그가 발랄라이카(기타 비슷한 러시아 전통 현악기)의 현을 퉁기자 이따금씩 범상치 않은 음계도 튀어나왔다.

장영규가 연남동에 있는 작업실 겸 거처의 소파 위에서 발랄라이카의 현을 뜯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와 목표는 뭔가.

▶누구 입맛에 맞추고 검사받아야 하는 기존의 영화음악이 재미없었다. 평소 친한 사람들끼리 ‘영화로 놀아보자’고 했다. 나도 음악 외에 시나리오나 촬영에까지 개입해볼 수 있어 좋았다. 기계가 발달해 싸게 찍을 수 있는 환경이 되니, 대자본의 압박을 벗어나 놀기 좋더라.

-공연에 대해 설명해달라.

▶27일과 28일에는, 40분 동안 백현진이 연출하고 내가 음악과 믹싱을 맡은 영화 ‘영원한 농담’을 상영한 뒤 그 자리에서 40분짜리 공연을 한다. 4명의 작곡가(장영규, 달파란, 주준영, 김선)가 4곡을 함께 연주한다. 곡마다 한 명의 작곡가가 메인 아이디어를 만들어와 던져주면 나머지 세 명이 각자 아이디어를 보태는 식으로 완성한다. 공연장에서 즉흥적으로 ‘퍼즐’을 맞춰보며 현장성을 더한다. 말하자면 준비된 즉흥연주다. 서로 눈치 보고 반응하는 과정이 재미날 거다. 29일과 30일에는, 구자홍이 연출하고 역시 내가 음악을 맡은 ‘위험한 흥분’을 두 시간 상영한 뒤 영화 속 밴드 멤버들과 함께 30분짜리 공연을 꾸민다.

-독특한 공연일 것 같다. 이번 영화와 음악은 어떤 스타일인가.

▶영화 ‘위험한 흥분’은 소음 단속 나온 마포구청 7급 공무원이 인디밴드와 얽히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음악은 홍익대 앞에 실재할 듯한 밴드 음악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엔딩곡과 화면의 매치가 너무 맘에 든다.

‘영원한 농담’은, 서울 사는 후배가 제주도 사는 선배이자 시인인 남자를 찾아와 계속 농담하는 내용의 영화다. 오광록, 박해일이 출연한다. 영화와 음악이 평행선을 그으며 각자 흘러가도록 작업해봤다.

-끝없는 ‘전위’와 실험의 원천은 뭔가.

▶못 배워서 그런 게 아닐까.(웃음) 무용음악 하면서 그런 게 형성된 것 같다. 별의별 음악을 다 모아놓고 안무가들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얘기들에 따라 음악을 만들어주면서, 이상한 사운드 만들어내는 데 재미를 붙였다.

-평소엔 어떤 음악 듣는지도 궁금하다.

▶음악 안 듣는다. 귀가 피곤해서. 하루에 5~6시간은 음악 작업 하니까. 참고하는 음악도 없고, 참고하고 싶지도 않다. 7~8년 전에 마지막으로 사서 들었던 건 일렉트로니카 음반들이다. 포티셰드(Portishead)나 랄리 푸나(Lali Puna) 같은. 그나마 디페시 모드(Depeche Mode)는 요즘도 가끔 듣는다. 사실 차에 있는 앨범이 그들 것밖에 없다.

-이번 프로젝트에도 오랜 음악적 동료인 백현진과 달파란 이름이 보인다. 이들과 자꾸 같이 하는 이유는 뭔가.

▶둘 다 너무 오랜 시간 같이 지내와서 이젠 말을 별로 안 하고도 통한다. 각자의 장점이 뭔지조차 지금은 잘 모르겠다.(웃음) 그냥 편하다.

-앞으로의 목표나 비전은?

▶음악으로서 할 수 있는 걸 안 해본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별의별 것 다 해봤다. 그래선지 ‘뭘 해봐야겠다’, 이런 건 사실 잘 안 떠오른다. 남들이 안 한 게 어딨겠나. 난 전혀 새로운 걸 한 적이 없다. 정말 새로운 게 없는 것 같다.

-상업적인 음악, 이를테면 아이돌 음악은 어떤가.

▶예전에 비해 너무 잘하는 건 분명하다. 정신만 차리면, 진짜 자기 것이 뭔지 알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더 좋아질 것 같다. ‘난 누구처럼 할 거야’라는 식으로 장르나 스타일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건 별로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요즘에는 인디 음악도 잘 못 들어봤지만 장기하는 그런 면에서 좋더라. 그냥 나오는 대로 하는 게 난 좋다.

-평범한 건 싫은가?

▶그렇진 않다. 평범한 것도 잘 소화하면 좋다. (…) 사실 평범하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임희윤 기자/ imi@heraldcorp.com
사진
=박해묵 기자/ 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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