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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투병 ‘워낭소리’ 감독, “남은 건 병과 후회 뿐, 그래도...”
엔터테인먼트| 2011-08-12 10:09
“차라리 TV방영이 무산된 후 영화로도 상영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고통과 불행은 없었을 겁니다. ‘워낭소리’를 만든 것을 후회합니다.”

뇌종양 투병 중인 이충렬 감독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낯빛엔 허망함과 자괴감, 세상에 대한 울분이 뒤섞여 있었다. “지난 2년간 스트레스와 울화병으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이 감독의 일산 집엔 수십개의 약봉지가 흩어져 있었다. 지난 6월 안면마비와 어지럼증으로 쓰러져 닷새간 일어나지 못하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지 한달여. 이 감독은 이후 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두문불출하며 외부와 일체의 연락을 끊었다. 안면마비 증세는 호전됐지만 시력 장애와 거동은 여전히 불편해 집안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생활한다. 곧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워낭소리’가 국민들께 감동과 즐거움을 줬다면 감사할 일이지만 너무 잘 돼서 모두가 쓸데없는 욕심이 생기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친구와 지인에게 돈 다 뺏기고…. 지금 집도 월세에요. 정말로 원치 않게 봉화군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삶을 건드려서 피해를 줬고 그들의 자식들에겐 불효자 소리를 듣게 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가 평생 지고 갈 짐이죠. ”

이충렬감독, 고영재PD. 이상섭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09.01.02

돌이켜보면 ‘워낭소리’의 기적은 쇠락한 고향의 산하와 아버지의 삶을 다루고 싶다는 열망에서 출발해 10여년간 자신의 영혼을 다바쳐 이룬 결과였다. 이 감독에겐 영화 속 할아버지처럼 전남 영암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을 뒷바라지 한 아버지가 있다. 독립 방송 PD로서 한번도 자랑스러운 아들인 적이 없던 이 감독. ‘워낭소리’로 성공이 뒤늦게 찾아왔지만, 환희는 신기루처럼 짧았다.

자신을 무너뜨린 세상에 대한 울분은 한때 “형, 동생” 하며 돈독했던 제작자 스튜디오 느림보의 고영재 대표에게 집중돼 있었다. 이 감독은 지난 5월 제기한 ‘정산금 청구 소장’에서 고대표가 자신을 공동제작자로서 예우하지 않았고 정산금 중 일부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 대표가 2009년 2월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전체수익 중 30%를 독립영화에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고 대표의 입장은 달랐다. “영화 제작 및 배급에 필요한 각종 비용과 영화 주인공에게 약속한 보상을 제외한 극장수익에 대해선 이미 이 감독과 50대 50으로 나누었다”는 것이 고 대표의 반박이다. 그는 “독립영화 30% 기부약속은 지켜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대표와 이 감독은 영화 흥행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와 독립영화 ‘혜화, 동’ 등 영화계에 각자 이름으로 3억원 이상씩을 기부ㆍ후원했다.

‘워낭소리’ 극장상영의 총수익은 과세 전 기준으로 76억원(각종 비용 산출 전 금액)규모로 추산된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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