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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권력의 저승사자인가? 파수꾼인가?
뉴스종합| 2011-08-16 09:48
깨끗한 정치 향한 열망

때론 권력의 심판대로…때론 정의의 수호자로


전두환·장세동

서슬 퍼런 권력도…피할 수 없던 관문


5공 비리조사특위때…정치신인 故 노무현

일약 국민스타 반열에


반대 위한 반대 논리…폭로전·인신공격 난무

일부선 무용론 제기도



8월 한여름 국회는 청문회 때문에 시끄럽다. 증인을 부르는 데도 여야 간 이견이 있고, 채택된 증인은 불출석하기 일쑤다.

청문회 제도가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청문회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긍정적인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그 청문회 속으로 들어가보자.

청문회는 들을 청(聽)과 들을 문(聞)을 써서 풀이하면 ‘듣고 듣는 자리’다. 증인과 참고인들로부터 증언과 진술을 ‘듣는’ 자리를 뜻한다.

그렇다고 듣기만 하는 자리는 아니다. 남자가 잘못했다면 여자가 “뭘 잘못했는지 소상히 말해보라”며 다그치는 모습처럼, 증인으로부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청문위원들의 송곳질문은 이어진다. 이렇듯 위원들의 거침없는 질문과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비리 의혹으로 때론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도 ‘청문회’다.

청문회의 목적은 국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각종 의혹이나 특정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앞으로 국민의 살림살이를 도맡을 공직자에 대한 철저한 도덕성과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때문에 잘 치른 청문회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3대 국회 때 열린 ‘5공비리조사특위 청문회’다. ‘노무현’이라는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 스타가 되기도 했다.


일해재단 설립과 기금모금에 관한 사항을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이 청문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장세동 전 안기부 부장 등을 증인으로 세움으로써 권력도 결코 청문회의 칼을 피해갈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결국 이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 감춰져 왔던 정경유착의 실태와 권력기관의 전횡 등 각종 비리와 음모가 부분적으로나마 세상에 드러났다. 동시에 정치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에서 ‘깨끗한 정치’를 향한 열망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증인들의 답변 회피나 거부 등이 빈번했고, 후속조치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웠다. 이후에도 청문회는 권력형 비리들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7년 당시 한보그룹에 대한 특혜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한보사건국정조사특위 청문회는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을 제기한 첫 청문회로 기록된다. 1999년 고급 옷 로비 의혹사건 청문회도 정경유착형 로비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청문회 중 하나다.

이어서 1997년 IMF 사태 이후 ‘IMF 환란 원인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와 2008년 ‘한ㆍ미 FTA 쇠고기 청문회’에서는 정부도 책임추궁을 면치 못한 채 증인석에 앉아야만 했다.


하지만 청문회가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공직자에 대한 업무능력 검증이라는 본분을 잊고 ‘정쟁의 장’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정부 비판에 주력한 나머지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를 앞세운 폭로와 인격 공격을 시도한다. 야당의 공격에 맞서 여당은 방어만 하는 나머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문제점은 최근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후보자에 대한 업무능력 평가보다는 ‘도덕성’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을 낱낱이 파헤친다.

때문에 미국식 인사청문회처럼 미리 공직자의 도덕성 평가를 완료하고 청문회 자리에서는 능력평가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청문위원의 날카로운 질문은 그간 감춰온 진실을 들춰낸다. 매스컴의 힘은 정치인을 ‘국민 스타’로 만들기도 한다. 특히 강한 한방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원에게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

청문회 스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의원시절인 1988년 13대 국회의 5공 비리 조사 특별위원으로 청문회에 참가했다. 차분하고 논리적 접근으로 알맹이 있는 답변을 얻어내며 단숨에 청문회 스타로 올라섰다.

겁없는 그였다. 전 전 대통령에겐 “우리 상식으로 하자”고 했고, 정 전 현대그룹 회장에게는 “저는 이 나라에서 가장 경륜이 탁월한 대기업 지도자가 이 국회에서 증언을 함에 있어 입장이 곤란하면 기억이 잘 안나는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길 바란다”며 다그쳤다.

근래 들어 조경태 민주당 의원이 회자된다.

그는 2008년 쇠고기 파동 당시 열린 한ㆍ미 쇠고기 협상 청문회에서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가 있느냐, 있으면 나에게 가져와보라”며 증인석에 앉은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에게 물었다.

이어 그가 “미국인들도 30개월을 넘긴 소의 고기를 먹느냐”며 질문을 던졌고 정 전 장관은 침묵 끝에 “저는 먹을 것이라고 믿습니다”고 말해, 당시 궁색한 해명이란 평가를 받았다.

디자이너 고 앙드레김은 증인의 자격으로 청문회에 출석했지만 청문회 스타가 된 케이스.

그는 1999년 8월 ‘고급 옷 로비 의혹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 의도치 않게 ‘김봉남’이란 실명이 매스컴을 타고 알려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특히 그의 특유한 말투가 국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청문회가 낳은 또 다른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8월 국회도 청문회로 시끄러웠다. 지난 4일과 8일,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두 번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됐다.

야당이 청문회 때마다 들고 나오는 ‘이명박 정부 고위 공직자의 4대 의무과제’(위장전입ㆍ부동산투기ㆍ병역기피ㆍ탈세) 의혹은 어김없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저축은행 국정조사 특위에선 여야의 증인 합의가 무산되면서 청문회가 결국 무산됐다.

국민들은 또다시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결핍에 고개를 저었고, 이른바 총체적 권력형 비리라는 저축은행 청문회 무산으로 피해자들은 고개를 떨궜다.

때론 시원했고 때론 답답했더라도, 우리 국회의 청문회는 한국 사회를 점점 더 맑게 만들 것이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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