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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현실속 현대판 고려장…“용서받지 못할죄” 그저 눈물만
뉴스종합| 2011-09-30 11:45
현대판 고려장, 과연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제 욕심 채우기 위해 부모를 해하고 버리는 ‘패륜아’도 있지만 대부분 이 땅의 자식들은 부모를 모시고 살지 못하는 죄책감을 크게 느낀다. 중년의 나이까지 맞벌이를 해도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자녀 뒷바라지를 하기에도 고된 현실은 부모에 대한 마음의 빚만 키운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주부 A(54) 씨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한 달 전쯤 됐을까. 전화가 울렸다. 언니의 전화였다.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셨대. 의식이 없으시대…”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정신없이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올해로 쉰네 살인 내가 마치 어린 소녀가 된 양 “우리 엄마 어떡해. 어쩌면 좋아”를 반복하며 떨고 있었다.

한시간이 걸려 도착한 병원, 이미 엄마는 수술실에 들어간 이후였다. 뇌경색 증상으로 쓰러져 있는 걸 엄마 집에 우연히 방문했던 동생이 발견해 119에 신고를 했다. 세 개의 뇌 혈관이 막혔다며 수술을 하지 않으면 바로 돌아가실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3시간여의 수술이 진행됐다. 하지만 88살 고령의 연세 때문에 결국 수술은 중단됐다. 수술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가장 시급한 혈관 한 개만 뚫는 데 그쳤다.

이후 한 달 가까이 엄마는 병원에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었다. 홀로 배변활동을 할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게 됐다.

“홀로 사시게 하는 게 아닌데…내가 모셨어야 했는데” “그날 만약 엄마 집에 아무도 안 갔더라면 그냥 돌아가셨을지도 몰라…” 형제들 사이에서 이런 자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딸만 5명인 탓에 다들 시집을 가서 제 가정 꾸리고 살다보니 친정엄마를 모시는 게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자식들을 모두 시집 보낸 엄마는 단칸방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아오셨다. 명절이나 생신 때 꼬박꼬박 찾아가려 노력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은 일.

크고 작은 지병을 앓으시는 걸 알면서도, 그러다가 정말 아무도 모르는 새 쓰러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걱정이 됐다. 하지만 다들 중년 여성이 돼서도 맞벌이를 하며 가정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 80대 노모를 모시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가끔 찾아봬면서 용돈 20만원을 손에 쥐어드리는 일도 남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걸 알고 있다. 마음 한 켠에 늘 죄책감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일을 그만둘 수라도 있다면 힘들어도 엄마를 모시고 살고 싶다. 하지만 50대 후반 월급쟁이로 살면서 언제 퇴직을 요구받을지 몰라 불안해하는 남편과 아직 대학생인 둘째 딸의 등록금과 취업준비 뒷바라지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며칠 전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 수 있는 일이 없다. 집에서 편히 모시라’는 통보를 들었다고 했다. 우리 형제들은 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의식은 돌아오셨지만 이젠 스스로 걸을 수도, 밥을 드실 수도 없는 엄마를 누군가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변한 것이 없어서다. 형제들 사이에선 요양병원에 모셔야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죽음의 위기를 가까스로 버티신 엄마를 반갑게 안아드릴 수 없는 현실, 불효 자식은 그저 눈물만 흘린다. 

<박수진 기자@ssujin84>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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