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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의사들이 매스 내려놓은 까닭은?
라이프| 2011-10-13 10:56
지난달 19일 오후 중국 베이징 퉁런 병원 의료진은 매스와 청진기 대신 플래카드를 들었다. 이날 40여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동료를 공격한 사람을 처벌하라”, “의료진에 권위를 돌려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한 시간가량 파업을 벌였다.

의료진들이 병원 밖으로 나간 사연은 이렇다. 하루 전 이 병원 이비인후과 의사인 수웬(43)이 환자에 공격을 당해 팔과 머리, 등을 17여 차례 칼로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수웬이 지난 2006년 직접 수술했던 왕바오밍이란 이름의 서예가. 왕은 수술 직후부터 치료결과에 불만을 제기했으며 블로그에 의사와 병원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더니 최근엔 수웬을 과실치사로 고발하더니 직접 자신을 수술한 의사를 응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치료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들이 의사를 공격하는 사례가 늘면서 중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근 보도했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병원을 찾는 환자 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의료의 질 격차가 심하고 의사ㆍ환자 간 윤리가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의 무관심으로 이 같은 비극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퉁런 병원 의사 습격사건에 이어 지난 달 21일 우한연합 병원에서도 사망한 환자의 가족들이 강철봉을 들고 몰려와 경비원 10여명에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앞서 8월16일에는 안면근육 수축을 치료받던 20대 청년이 결과에 불만을 품고 의사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의사 습격사건은 올 들어 벌써 9차례나 발생했다.


이번 폭력사건 이후 중국 주요 논객사이트에는 범인인 왕을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중국 최대 논객 웹사이트인 톈야에서 ‘ole2011’ 아이디를 쓰는 한 누리꾼은 “범인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면서 부상당한 의사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나 또 다른 포털사이트인 소후닷컴에는 “돈에 눈이 먼 의사들은 이번 기회에 반성해야 한다”는 글이 꽤 많은 공감을 얻는 등 의사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표출되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중국 보건 당국과 기구들은 이례적으로 의사에 대한 폭력행위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중국에서 의사ㆍ환자 간 갈등표출은 점점 더 잦아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 병원경영연합의 집계에 따르면 의료분쟁 건수는 지난 2002년부터 연 평균 23%씩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폭력사태의 위험이 늘 잠재돼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환자와 의료진 간 분쟁조정 기구 설립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의사에 대한 잇딴 폭력사태로 의료계 내부에선 “그만두고 싶다”는 회의와 냉소가 팽배해지고 있다. 베이징의 한 정형외과 의사는 “중국에서 의사들은 결코 기득권층이 아니다”라면서 “면허를 따기 위해 젊은 시절을 다 바치지만 경제적 보상은 미미하다”고 토로했다. 중국의사협회가 올해 초 의사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의사 96% 가량이 월급에 ‘불만족’ 하며 78%는 자녀가 의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 경우 인구 1000명 당 의사 숫자가 겨우 0.95명으로 의료의 질이 낮은 것도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시나웨이보에서 자신이 의사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공격당한 수웬과 같은 외과의사는 하루에 수술을 20건 정도를 한다”면서 “만일 이번 공격으로 그녀가 다시 매스를 잡을 수 없다면 매년 수백 명의 암환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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