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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cupy 서울’ 시위의 두 얼굴…“서민경제 위기 경각심” vs “제2의 촛불 획책 의도”
뉴스종합| 2011-10-16 16:31
‘투기성 금융자본을 반대한다’며 지난 15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국제 공동행동의 날’ 집회가 애초 예고했던 시간보다 앞당겨 별다른 충돌 없이 끝났다. 이날 집회는 당초 안일한 태도로 금융 위기를 촉발시키고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 금융자본, 특히 국내에서는 ‘저축은행 사태’를 양산한 금융 당국과 금융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진보성향 시민ㆍ사회단체들이 집회에 깊숙히 개입하면서 ‘한ㆍ미 FTA반대’ ‘4대강 반대’ 등 금융과 상관없는 이슈들이 집회의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상당수 시민 사이에서는 “반미(反美)를 외치면서 시위는 미국에서 수입해 온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대부분 20ㆍ30대…“촛불 켜야 할 곳 아직도 많아”=‘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기치를 내걸고 15일 오후 6시 서울광장에서 진행하려고 했던 ‘월가 시위 국제연대집회’는 결국 서울광장 진입에 실패했다. 집회를 불허한 경찰이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 광장 진입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큰 물리적 충돌없이 시위는 인근 대한문 앞에서 진행됐다.

이날 대한문 집회에 모인 인원은 주최 측 추산 1000여명(경찰추산 600여명)으로 ‘99% 행동준비회의’ ‘빈곤사회연대’ ‘다함께’ ‘전국학생행진’ ‘다음 아고라’ 등 42개 시민사회단체와 일반시민들이 참여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일부 정당도 함께했다. 대부분 단체와 정당이 진보성향이었다. 경찰은 20개 중대, 140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시위참여자들은 촛불을 켜고 자유발언 시간을 가졌다. 박석운 한ㆍ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대표는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경찰을 투입했다”며 “오후 2시에 있었던 여의도 금융감독원 시위에서 이명박 대통령 가면이 나타났기 때문인가”라며 정부를 규탄했다.

시위 참여의 대다수가 20~30대 청년층이었고 진보성향 청년시민단체의 깃발이 곳곳에 나부꼈다. 이들은 ‘금융 위기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이야기했지만, 주로 ‘FTA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일부는 ‘제2의 촛불’을 켜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윤희숙 한국청년연대 대표는 “소수만 재산이 늘고 나머지가 희생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체제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도 99%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다”고 집회 참여 이유를 밝혔다.

자신을 촛불 네티즌이라 밝힌 한세정 씨는 “비정규직, 반값등록금, 한진중공업 문제 등 촛불을 켜야할 곳이 너무 많다”며 “ ‘Occupy 서울’에서 이 모든 의제들이 하나로 뭉쳤다. 99%의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저녁 8시40분께 주최 측인 ‘99% 행동준비회의’는 시위 해산을 알리며 “다음 주 토요일인 22일에는 ‘시청광장’에서 집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서민경제 위기’ 아닌 ‘4대강 반대’ 등 요구…“순수성 의심”=그러나 이번 ‘Occupy(점령) 서울’ 집회가 반정부ㆍ반미 시위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며 시작된 점령시위가 서울에 상륙하면서 성격과 본질이 뒤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정책ㆍ감독 실패와 부패로 인해 생긴 저축은행 사태에 따른 피해 서민들의 눈물을 모른 척했던 세력이 이제야 금융 비판에 나서겠다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도 “나라마다 상황이 다른데 외국의 움직임을 따라 시위를 벌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평소에는 ‘반미’를 외치던 사람들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즉각 수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광장 근처에서 일한다는 한 시민도 “집회의 원래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순수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일부에서 또 다른 ‘촛불 시위’의 빌미로 삼게 된다면 재차 혼란에 빠질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실제로 ‘Occupy 서울’은 30여개 시민단체 연합인 ‘99% 공동행동준비회의’ 주최로, 다른 나라의 집회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금융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서민경제 수탈을 규탄했다. 그러나 서울집회에서는 ‘미디어렙 법안 통과’ ‘소파(SOFAㆍ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등 월가 시위에서 나온 주장과 직접 관련이 없는 현안들이 요구 대상으로 다뤄졌다.

이에 대해 시위 주최 단체 중 하나인 금융소비자협회 관계자는 “저축은행 사태 때 금융 관료들과 저축은행 임직원에 대한 고발 조치를 했고, 피해보상을 위한 집단소송도 기획했다”고 반박했다. 집회 주최 측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서민피해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왔다”고 강조했다.

사건팀/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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