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안철수는 ‘편지정치’…박근혜는 ‘수첩정치’
뉴스종합| 2011-10-25 14:02

 ‘안철수는 편지정치, 박근혜는 수첩정치’

2012년 가상 대결에서 팽팽하게 맞서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주거니 받거니식 메시지정치가 화제다. 안 원장의 편지메시지에 박 전 대표는 정책수첩이라는 정치권에서 전혀 다른 문법으로 각각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현한 셈이다. 서울시장 선거가 대선 전초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예비 대선주자의 신경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5일 나경원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전격 방문, 한권의 수첩을 전달했다.

전날 안 원장이 박원순 후보에게 레터(편지)를 한통 전달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박 전 대표가 선거운동 지원에 나선 이후 서울 곳곳을 누비며, 버스 전용차로의 단절, 보육시설 혜택 기회의 제한, 영아 예방접종 개선점 등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자필로 기록한 ‘서울시 정책’이 빼곡히 담겼다. 박 전 대표는 “우리 나 후보에게 꼭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나 후보에게 “시민들이 어려움 호소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도 많은데, 당선되셔서 잘 해결해주시길 바란다”며 “시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 있으시리라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첩을 건내 받은 나 후보는 “당 대표 시절 지방에 갈때 정책 실천을 꼼꼼히 따져보시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앞으로 박 전 대표, 중앙정부와 함께 시정이 시민들의 변화를 잘 담아내도록 잘 하겠다”고 화답했다.

한 관계자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범야권 박원순 후보에게 컴퓨터로 작성한 편지를 전달했지만, 박 전 대표가 준비한 것은 직접 자필로 적은 정책 수첩”이라고 말했다.

평소 수첩공주로 불릴만큼 메모광인 박 전 대표의 이날 ‘수첩 메시지’는 자신의 안정된 이미지뿐만 아니라 나 후보 역시 콘텐츠가 있는, 서울을 책임질수 있는 시장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수첩을 한장 한장 넘기며 주요 정책·건의사항을 읽었고, 나 후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단답형으로 하고, 자리를 떴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박 전 대표는 또 “민주주의 정당정치, 책임 정치” 같은 단어를 언급했다. 안 원장에게 날린 견제구로 풀이된다.


안 원장은 지난 24일 박 후보 사무실을 찾아 전달한 편지는 젊은층의 투표참여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안 원장은 ‘변화’ ‘새로운 시대’ ‘미래’ ‘바꿈’ ‘전환점’이란 용어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008년 대선에서 ‘Change(변화)’를 대표 슬로건으로 사용했다는 점과 유사하다. 대선출마를 염두에 둔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결국 두 사람은 앞으로도 ’대안있는 안정‘과 ’변화‘로 맞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시장 단일화이후 48일만에 등장한 안 원장은 짧은 기간에 안 원장은 ‘정치인 안철수’로 한층 진화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우선 과감성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안 원장이 이날 박 후보의 종로구 안국동 선대위 사무소를 직접 방문할 것이라곤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박 후보의 캠프 측에서도 안 원장이 ‘제3의 장소’에서 지지를 표명하거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간접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안 원장은 예상을 깨고 2시간 전에 방문계획을 박 후보에게 직접 통보, 경기도 수원 연구실에서 곧장 사무소로 달려오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안 원장이 박 후보에게 건넨 편지를 놓고서는 그의 ‘첫 번째 정치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국내 정치권에서 볼 수 없던 편지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유권자들에게 감성적 소구(訴求)를 했다고 공통적으로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 의회 지도자들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편지 정치’를 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무거워진 입’도 변화한 모습이다. 과거 취재진의 물음에 일일이 반응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날 안 원장은 어떤 질문에도 응하지 않았다. 박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안 원장이 불필요한 말로 정치적인 오해를 사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 후보는 이날 9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박 전 대표를 맞았고, 두 사람은 환한 표정으로 반갑게 악수한 뒤 사무실로 입장했다. 사무실을 가득 메운 200여명은 박수와 함께 ‘박근혜, 나경원’ 연호로 반겼다. 두 사람은 잠깐 비공개 면담을 나눈 후 도보로 25분가량 걸리는 서울역까지 ‘걷는 유세’를 위해 캠프 사무실을 나섰다.

〈최정호ㆍ서경원 기자@blankpress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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