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뻔한 스토리…뻔하지 않은 감동
엔터테인먼트| 2011-12-21 10:49
치매걸린 며느리 인정

기존 드라마 문법 파괴

이해·성찰·화해의 결말

김수현표 멜로 각인



일흔을 앞둔 노(老) 작가가 쓴 감성은 2011년 말에도 통했다. 20일 인기리에 종영한 SBS ‘천일의 약속’은 “시체도 벌떡 일으켜 TV 앞에 앉힌다”는 ‘언어의 연금술사’ 김수현 작가가 왜 김수현인지를 각인시킨 드라마다. 김수현식(式) 정통 멜로드라마였지만, 이전 드라마와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령의 작가는 오히려 시대적 감성을 앞질러 시청자를 숙고하게 하는 힘을 발휘했다.

‘천일의 약속’은 주인공의 남다른 출생과 성장 과정, 시한부 삶,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있는 러브라인 등이 여느 통속 멜로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

이런 뻔한 스토리 라인이 뻔하지 않게 극화된 것은 30대 알츠하이머병이란 특이한 소재, 기존 드라마들보다 한 걸음 진보된 극 중 인물의 성격과 관계 등 때문이란 평가다. 수애, 김혜숙, 이미숙 등 출연 배우의 열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정을영의 연출은 드라마의 품격을 높여 놨다.

지형(김래원 분)의 어머니(김혜숙 분)가 치매에 걸린 며느리를 인정하는 모성은 기존 드라마의 어머니상(像)을 뛰어넘는다. 아들이 결혼하려는 여자가 치매가 걸렸다면 결혼을 반대하고 둘을 떼어놓으려는 게 상식적인 모성이다. 김혜숙은 아들의 자율적인 결정을 존중함으로써 지성을 갖춘, 남다른 모성을 보여줬다.

김수현 작가는 전작 ‘내 남자의 여자’에선 불륜의 치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동성애의 동침과 애정 표현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등 시대적 감성을 앞선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김수현”이란 소리가 나왔다. 향기(정유미 분)의 지형을 향한 무한한 순애보 사랑, 서연(수애 분)과 친모의 관계가 DNA가 흡사한 것 이상으로서의 별 의미 없게 그려진 점 등도 이전엔 볼 수 없는 인물과 모자관계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흔했던 인물 간의 아귀다툼식 갈등과 따발총 대사는 줄고, 감성적인 내레이션과 원거리 촬영이 대신하면서 이해와 성찰, 화해의 마무리는 돋보였다.

그러나 여성 인물에 비해 남성 인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 극의 중반부를 넘겨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 점 등은 한계로 남았다. 20일 마지막 회 시청률은 19.8%(AGB닐슨미디어리서치)로 20%의 벽을 넘진 못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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