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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들린다. 이색 연주자가 말하는 이색 악기의 매력은?
라이프| 2012-01-12 14:31
‘너를 사랑해’라는 말도 로맨틱한 선율에 실리면 그 감정은 배가 돼 전해진다. 때론 장황한 ‘말’보다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소통의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악기(樂器)다. 멜로디 없는 영화나 드라마가 없는 걸 보면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할 때, 악기는 훌륭한 메신저 역할을 한다. 이 때문일까. 남녀 불문하고 ‘악기 하나쯤 잘 다루는 것’에 대한 로망을 품게 마련이고 악기가 빚어내는 선율의 유혹에는 이내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만다. 한 번쯤 들어보고 만져봤던 악기의 매력도 늘 새삼스러운 감동을 전하는데, 이색 악기가 뿜어내는 색다른 매력은 오죽할까. 이색 악기 연주자를 만나 이색 악기의 매력을 엿봤다.


▶인간의 목소리 닮은 편안함, 선율로 심금 울리는 ‘오보에’

오케스트라 안에서 더 빛나는 악기. 서정적인 선율로 목가적인 느낌을 전하기에 손색없는 오보에. 그 소리 안에는 구슬픔과 따뜻함이 오묘히 담겨있다. “오케스트라 목관 악기군 중에서 오보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요. 처음 음을 맞출 때도 오보에가 내는 ‘라’음에 맞추니까요. 선율을 담당하는 만큼 부담감도 있지만 그만큼 오보에의 임팩트가 크다는 뜻도 되죠.”

오보이스트 함경(20)은 오보에는 오케스트라에서 음악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향곡이나 오케스트라 작품 중에는 오보에 솔로를 위한 곡들이 많다. 



“오보에를 연주할 때 제일 중요한 게 ‘리드’라는 부분이거든요. 만들어진 리드를 사서 쓰는 연주자도 있지만 저처럼 일일이 만들어 쓰는 경우도 많아요. 리드의 모양에 따라 전혀 다른 음색이 연출되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 다듬게 되고요.” 10년 가까이 오보에와 함께한 그는 오보에의 또 다른 매력에 대해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는 ‘정성의 악기’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와 닮은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점, 그래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점은 오보에가 주는 편안한 매력이다. “영화 ‘미션’ OST의 유명한 멜로디를 사람들은 다 알죠. 그걸 오보에로 연주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보에의 선율이 그렇게 아름다웠나 다시 생각하는 것 같아요.”라는 연주자의 말처럼 화성악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오한 선율만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것. 바로 오보에의 순수한 매력이다.


▶모든 악기와 앙상블…로맨틱한 천상의 소리 ‘하프’

하프는 아름다운 외양만큼 특별한 대접을 받는 악기다. 악기 부피나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연주회가 있으면 용달차를 이용해 운반해야 하고 해외 공연을 위해서는 일주일에서 열흘 먼저 항공 화물을 통해 악기를 보내야 하는 것. 프로 연주자들이 쓰는 하프는 악기 자체의 무게가 최소 38㎏에 이르고 케이스 무게만도 100㎏ 정도다. 총 150㎏에 육박하는 육중한 악기가 바로 ‘하프’다. 하피스트 곽정(39)은 이에 대해 “첼리스트들이 악기 때문에 비행기 좌석 하나를 더 예매해야 한다고 하는데 귀여운 투정같이 느껴지죠. 저는 연주 직전까지 악기가 도착하지 않아 애를 태운 적도 있었거든요”라며 하피스트들이 겪는 남다른 에피소드를 전했다. 하지만 그 무게와 부피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외양과 소리를 지닌 악기가 바로 ‘하프’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존재감은 그 어떤 악기보다도 크다.
 

'천사의 악기’라는 별명에 걸맞은 영롱하고 우아한 소리를 빚어내는 것. 미국에서는 신부들이 결혼식장에서 하프 반주에 맞춰 입장하는 것을 큰 로망으로 여기고 영화나 드라마의 로맨틱한 장면에 하프 연주가 종종 배경음악으로 쓰인다. 바로 하프의 달콤한 소리 때문이다. 곽정은 “하프는 바이올린, 첼로는 물론이고 플루트, 더블베이스, 색소폰 등 대부분의 악기와 조화를 이루고 24현 가야금 등 국악기와 협연해도 손색없는 앙상블을 만들어낸다”며 하프는 음색이 비슷한 피아노를 제외한 모든 악기와 잘 어울리는 ‘성격 좋은 악기’라고 말했다. ‘육중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과 ‘사랑’을 노래하기에 손색없을 만큼 로맨틱한 선율을 빚어내는 것이 바로 하프의 반전 매력이다.


▶섬세한 떨림으로 표현하는 자유와 방랑 ‘집시 기타’

옛 시절을 추억하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기타줄을 튕기며 젊음의 열정을 표출했던 때를 떠올리기 쉽다. 이처럼 기타는 과거를 여행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갖고 있는 악기다. 다양한 종류의 기타가 있지만 풍부한 소리를 내는 통기타 등과는 달리 집시 기타는 소박한 듯 가냘픈 음색을 만들어낸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밴드 자우림과 함께 무대에 올라 집시 기타의 이색적인 음색을 전했던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32). 그는 “집시 기타의 독특한 음색은 기타 중간에 있는 ‘사운드 홀’이 다른 기타에 비해 작아서 선율을 가늘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시 기타는 원래 정교하게 만들어서 연주하던 악기가 아니기 때문에 투박하고 기타를 치는데도 불편함이 있다고 덧붙였다. 연주자가 강력하고 거칠게 악기를 다뤄야 소리가 제대로 나는 것. 그야말로 ‘자유를 갈망하는 집시’들이 자유분방하게 연주했던 악기인 셈이다. 박주원은 또 “개인적으로 집시 기타는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나 클래식 악기와는 조화를 잘 이루는 데 반해 드럼이나 베이스 같은 현대적인 악기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듬감이 넘치는 악기와 앙상블을 이루기엔 집시 기타는 미세한 떨림을 통해 ‘고독’과 ‘한’을 전하는 데 더 적합한 악기인 것. 자유와 방랑의 상징. 삶의 힘겨움을 온몸의 떨림으로 전하는 듯한 집시 기타는 슬픈 악기다. 슬플 때 더 슬픈 소리로 위로를 받고 싶다면 집시 기타가 빚어내는 음색은 강력한 위로의 선율이 된다.


<황유진 기자@hyjsound>/hyjgogo@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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