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3남6녀, 볼수록 옹골집니다
뉴스종합| 2012-01-19 10:20
핵가족 시대, 어울려 사는 걸 못배우는데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어울려 크죠…
정서 발달에도 좋고, 부모입장에서도 키우기가 훨씬 편해요

가정의 최우선은 ‘엄마’죠.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들도 절로 행복하고…
힘든 출산도 편안하게 하더라고요

1986년에 첫 아이…한때 출산 억제정책에 불이익도 많았죠.
자녀 2명 이상이면 의료보험 혜택도 못받고 
‘야만인’소리까지 들었는데…

옛말에 사람은 자기 먹을거 가지고 태어난다더니 그 말이 맞더군요…
키울 걱정만 말고 용감하게 도전 해보세요


“딸, 딸, 딸… 많이도 낳으셨네. 딸, 딸, 딸… 거짓말이죠? 아들, 아들, 아들… 에이, 무슨 야구단도 아니고.”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자녀 아홉(딸 여섯에 아들 셋)을 둔 부부가 있다. 허정훈(56), 이유미(52)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6년 11월 서울 중구에서 개최한 제1회 중구 다복왕 선발대회에서 다복상을 받기도 했다. 2007년 4월, 서울 중구청이 자녀 열을 낳으면 3000만원의 양육비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던 것에 가장 근접한 가족이다.

서울 중구청의 한 직원은 애초 ‘자녀 열 명에게 3000만원을 지원한다’는 정책은 “이 가정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을 정도다. 자녀가 아홉이라는 점이 다복상 수상의 원동력이었다.

이날 시상식에서 다섯 자녀를 둔 부부가 화목상, 네 자녀를 둔 부부가 행복상을 받았는데, 자녀 수로만 봤을 때 허정훈, 이유미 씨 부부의 카리스마(?)는 좌중을 압도했을 정도다.

중구 다복왕 선발대회는 이때 개최된 이래 유야무야됐다. 선발대회 수상자에게 주던 양육비는 오늘날 출산지원금으로 바뀌었다. 허ㆍ이 부부는 다복상 수상 당시, 상금으로 받은 육아보조비 100만원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며 내놓았다.

허씨네 다둥이 가족의 설날 명절 표정은 어떨까.

아홉 자녀를 둬 2006년 다복왕상을 수상하기도 한 허정훈(52), 이유미(52) 씨 부부가 설을 앞두고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자녀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둘째 순행(26), 이-허 부부, 여섯째 경진(17). 아랫줄 왼쪽부터 일곱째 선행(15), 아홉째 은진(9), 여덟째 승진(11), 다섯째 신행(20). 첫째 효진(27) 씨와 셋째 수진(25) 씨는 시집을 가 함께하지 못했고, 넷째 혜진(24) 씨는 유학 준비로 바빠 자리를 비웠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아홉 자녀 다둥이 가족의 설맞이는 어떤 모습=2012년 용띠 해 설날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둥이 가족 허정훈, 이유미 씨 댁의 설맞이 풍경을 엿봤다.

“어머, 벌써 오셨어요? 추운데 얼른 들어오세요.” 이유미 씨의 전화 목소리가 시원시원했다.

집에 들어서자 시집간 첫째 효진(27) 씨 대신 제일 맏형이 된 둘째 순행(26) 씨 이하 초등학교 2학년 막내 은진이까지 6명의 자녀가 모여 있다. 시집간 셋째 수진(25)씨, 유학 준비로 바쁜 넷째 혜진(24) 씨 등 자녀 3명은 사정상 집을 비웠다.

손님을 맞는 이유미 씨는 아홉 자녀를 직접 낳고 기른 당사자이지만, 5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동안(童顔)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식탁 옆에는 중구 다복왕 수상 당시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여덟째와 아홉째인 승진(11), 은진(9) 양은 한복을 예쁘게 차려 입었다. 다른 자녀들은 수다를 떨거나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 집안 전체가 떠들썩하다.

아빠 허정훈 씨는 “우리 가족이 설날을 보내는 하루 하루는 오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허 씨는 사실 6남매 중 넷째다. 그렇지만 명절 때만 되면 친척들이 모두 허 씨의 중구 신당동 아파트에 모여 명절을 쇤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 광명에 사는 큰형, 마포에 사는 둘째형, 김포에 사는 누님, 일산에 사는 남동생, 김포에 사는 여동생이 모두 모이면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엄청난 대가족의 위용이 갖춰진다. 큰형 자녀 둘, 둘째형 자녀 둘, 누님 자녀 둘, 남동생 자녀 셋, 여동생 자녀 둘을 모두 단순 합산해도 30명을 거뜬히 넘어선다.

부인 이 씨는 “우리 아이들까지 자녀만 20명에 이르고 어른까지 합하면 총 33명”이라며 “우리가 사정상 어머니를 모시게 되자, 자연히 가정의 중심이 됐다”고 부연했다.

설날 허정훈, 이유미 씨 부부는 세뱃돈 부담도 가장 적다. 반면, 다른 형제들은 아홉 명의 세뱃돈 챙기느라 싹쓸이를 당하는 기분이다. 이 씨는 “설날 세뱃돈은 우리 아이들이 휩쓸죠”라며 웃었다.

설날 아이들의 표정은 행복하다고 한다.

허 씨는 “요즘 핵가족 시대라서 아이들이 어울려 사는 걸 못 배우지 않느냐”며 “반면에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어울려서 크기 때문에 정서 발달에도 좋고, 부모 입장에서 키우기도 훨씬 편하다”고 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함께 살아서 그런지 어른들도 표정이 환하고 밝아보였다.

▶어떻게 아홉을 낳았냐고요?=여섯 명이 떠들썩하게 손님맞이를 하고 다시 자기 일에 몰두할 무렵, 안방에서 나온 허정훈 씨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그의 행복지론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바로 ‘가정이 행복해지려면 아내가 행복해야 한다’다.

“가정 행복의 최우선 가치는 행복한 엄마예요.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들은 자연히 행복해지거든요.” 실제로 그는 결혼 후 모든 가치 판단의 중심에 아내의 행복을 두었다고 한다.

“아빠의 엄마에 대한 충만한 사랑이 아이에게로 전해지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요즘은 부모가 서로 아끼기보다는 자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죠. 배우자 간 애정결핍이 과도한 자녀 사랑으로 이어지면 결국 부모와 자녀 모두 불행해질 겁니다.” 허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아내를 진심으로 대하자 아내도 출산에 대해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임신하는 족족 마음 편히 출산했다. 허 씨는 아내가 남편을 신뢰하게 되면 낳아도 잘 기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출산에 부담을 덜 느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아내 이 씨는 “제가 유난히 입덧이 심하다”며 “그렇지만 임신하면 정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출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혹시 앞으로 임신하게 되더라도 낫겠다는 입장이다. 굳이 중구의 열 자녀 3000만원 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낳고 싶어요. 제가 낳을 수 있을 때까지….” 그녀의 고집이 보인다.

남편 허 씨의 자녀교육 철학도 들어볼 만하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남에게 뭔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립할 수 있는 사람, 사랑이 충만한 사람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아이 아홉을 낳고 키울 때까지=그가 첫 아이를 낳은 때는 1986년. 처음부터 아홉을 낳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어려서 가난했던 허 씨는 기술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좁은 신혼집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자녀 수가 점점 늘어가자 주위에서는 애 키우기 힘들겠다며 걱정했다.

허 씨는 당시 출산억제책을 펴던 정부 시책에 역주행하면서 불이익도 봤다. 자녀 2명 이상이면 의료보험 혜택도 없었고 아파트 분양권도 안 줬다. 야만인 소리까지 들어야 했을 정도다.

그러나 허 씨는 “옛말에 사람은 자기 먹을 거 갖고 태어난다고 하지 않느냐”며 별로 걱정도 안 했다.

정말 재산은 순탄하게 불어났다. 특허청에서 일하던 그가 공직을 떠나 민간회사에서 변리사로 일하자 월급이 많이 올랐다. 다시 법률회사로 옮겨 일하면서 연봉이 또 불어났다.

부동산 ‘운때’도 들어맞았다. 경기도 시흥에서 살다가 화곡동, 목동으로 이사했다. 목동에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집값이 꽤 올랐다. 이사를 가면 집값이 오르는 현상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자산은 갈수록 늘었다.

그의 알뜰한 경제 관념도 한몫했다.

큰 집에 전세로 살아본 적이 있는데 그때 경험상 ‘집은 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안정된 생활이 중요했다. 집은 작되, 오순도순 살면 그만이었다.

지금 자녀들과 함께 10여명이 사는 집도 32평(105㎡)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그저 믿는 바대로 나아갔을 뿐”이라고 했다. 대화 중 여러 번 ‘소신’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애 키우는 게 걱정이라고요? 일단 용감하게 도전하세요”=저(低)출산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걱정 말고 용감하게 도전해라.”

“20대는 인생의 황금기 아닙니까. 연애하고 결혼해야죠. 그 나이에 취직한다고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안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죠. 두려워하고 걱정한다고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건 없어요. 나아가세요. 길이 열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크게 울려퍼졌다.

말미에 그는 자신의 성공론도 풀어놨다.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있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는 인터뷰 이후 30여분간 사진촬영 때문에 6명의 자녀들과 씨름했지만 표정에는 행복이 묻어났다.

글=김수한 기자/soohan@heraldcorp.com
사진=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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