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패션
모범생 블랙슈즈는 가라!
라이프| 2012-01-26 10:34

“근사해 보이죠? 환상이에요. 디자이너가 앉아서 그림만 그릴까요?”

연예인 신발 ‘슈콤마 보니’ 덕에 슈즈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가 많다고 하자 손사래를 친다. 손끝이 까맣다. 국내에만 매장이 14개. 일본에서 국내보다 배로 비싼 가격에 팔리는 고급 구두의 대명사다. 하지만 여전히 신발 만드는 일은 험하고 어렵다. 가죽 샘플을 만지고 살아서 손톱 밑은 늘 지저분하다.  

흔히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신발은 패션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데 ‘패션은 신발에서부터’라며 그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사람이 있다. 최근 프랑스 쁘렝땅백화점 입점 등 해외서도 주목받고 있는 국내 슈즈디자이너 1세대 ‘슈콤마 보니’ 이보현 대표다. 

▶구두는 여자의 자존심, 힐 신고 당당해져라=2003년 청담동에 ‘슈콤마 보니’ 매장이 처음 문을 열자 그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지역적 특색의 이점을 입었지만,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청담동은 해외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상권이었다. ‘Made in Korea’로 단독 매장을 내는 것 자체가 모험이던 시절이었다.

“매장 별명이 ‘청담동 만원버스’였어요. 오픈하자마자 손님으로 북적거렸죠. 두 달씩 주문 예약이 밀려있곤 했어요.”

세계적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인 ‘지미 추’ ‘마놀로 블라닉’을 신은 모녀가 와서 몇 켤레씩 ‘슈콤마 보니’의 제품을 구입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국내선 볼 수 없었던 디자인.

이 대표는 단정한 검은색 구두는 진열대에서 없앴다. 애매한 높이의 굽도 없앴다. 모두 플랫이거나 9㎝ 힐. 화려하고 아름답고 여성스러웠다.

“전 힐이 너무 좋아요. 여자의 구두는 여자의 자존심이에요. 높은 힐을 신으면 몸과 마음의 자세가 달라져요. 똑같은 옷에 운동화 대신 하이힐만 신어도 의기양양해지잖아요. 어딘지 당당해지는 기분이 들죠.”

신발을 뜻하는 영어단어 슈(shoe)와 그녀의 영어이름 보니(Bonni)를 합성해 ‘슈콤마 보니(suecommabonni)’가 탄생했다.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이력답게 옷만큼이나 신발을 좋아했다. 처음부터 ‘슈’와 ‘보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국내선 신고 싶은 신발이 없었어요. 가끔 해외 나가면 ‘프리랑스’ 같은 외국 브랜드 매장을 찾아 꼭 한 켤레는 신고 들어왔어요. 마음에 쏙 드는 신발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 여자들은 모두 알 거예요.” 

남성복 디자인을 그만두고 이탈리아에서 잠시 편집숍을 운영하던 이보현 디자이너는 앉아서 기다리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직접 신발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에이전시를 운영하며 쌓은 인맥과 경험을 토대로 2003년 청담동에 ‘슈콤마 보니’를 론칭했고, 현재 갤러리아와 롯데 등 주요 백화점을 중심으로 국내에만 14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프랑스, 중국 등에 진출한 ‘슈콤마 보니’ 이 대표는 패션 피플 누구나가 최고로 꼽는 ‘슈즈 멘토’다. 지난해 여름 런던 헤롯백화점 전시회(위 작은 사진 오른쪽 두 번째)와 서울패션위크 2012 S/S 콜렉션에서 선보인 제품.

▶구두, 옷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친구=자신이 신고 싶은 신발로 가득찬 매장을 갖는 소박한 꿈이 ‘슈콤마 보니’의 시작이었다. 영국 런던 헤롯백화점에서의 전시와 프랑스 쁘렝땅백화점 입점 등을 통해 지금은 해외시장서도 주목받고 있는 이 대표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남자 옷을 만들던 디자이너였다.  

“옷이나 신발이나 비슷하다고 여기는 분이 많은데, 미세한 작업까지 200여 공정을 거치는 신발은 전혀 다른 분야였어요. 올해로 13년째인데, 아직도 힘들어요.”

신발엔 체중이 실린다. 옷보다 사이즈를 맞추는 일이 더 정교하다. 아주 예민한 녀석인 셈. 부자재가 많은 만큼 모든 게 분업화해 있다. 거기에 전통적으로 가죽을 다루는 기술자와 디자이너의 관계 설정도 민감한 분야다.

“한때는 공장에서 살았어요. 신발공장 사장님과 매일 점심 먹으며 술도 마셔드렸죠. 기술자께 제가 직접 커피도 타드리고 다방 커피도 주문해드리고…. 여러번 수정작업을 거쳐 맘에 드는 샘플 하나 건지는 일이 쉽지 않았죠.”

잘나가던 남성복 브랜드의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자칭 이멜다’ 이 대표는 95년부터 해외 신발을 수입, 국내에 판매하는 에이전트 일을 했다. 97년 금융위기로 사업을 접었지만, 더 넓고 새로운 길이 열렸다.

“에이전트 일을 통해 쌓은 인맥과 경험이 있었죠. 문득 그걸 활용해 직접 만든 신발을 팔면 어떨까 생각 했어요.”

지나다니며 봐두었던 청담동의 한 꽃집이 이전한다는 소문를 듣고 이틀 만에 계약했다. 그리고 오픈까지 한 달 걸렸다. 많은 디자인과 콘셉트가 이미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국내 시장 반응도 좋았지만, 수출도 수월했어요. 에이전트 일을 하면서 혼자 신발 짊어지고 회사 방문하고, 주문 받고, 송장 쓰고 하는 일에 도가 텄거든요.”


▶올 봄 스타일링, 신발부터 고르자=옷 정말 잘 입어도, 신발 못 신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비싼 옷을 입어도 그 순간 ‘센스 없는’ 사람이 된다.

“가끔 매장에 옷을 가져 오시는 손님이 아직도 있는데, 요즘엔 신발부터 사고 옷 맞추는 일이 많죠. 신발이 패션의 완성이라고요? 신발이 패션을 리드하죠.”

처음 ‘슈콤마 보니’가 론칭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부츠컷 청바지가 유행했다. 그에 맞춰 이 대표는 당시 화려하고 높은 하이힐을 주력으로 내놓았다. 다리가 길어보이는 부츠컷 청바지에 화려한 하이힐, 그리고 상의는 티셔츠나 플로랄 프린트의 시폰 원피스가 당시 패션리더의 공식과도 같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중성화한 것 같아요. 좀더 시크한 분위기가 대세죠. ‘공효진 워커’가 유행한 것도 그 흐름에 있어요.”

신발을 패션의 완성이 아닌 ‘시작’이라고 하는 이 대표에게 신발부터 시작하는 올 봄 스타일링을 부탁했다.

“올 봄엔 워커를 신으세요. 그리고 레깅스에 짧은 청반바지를 입죠. 위에는 오버사이즈의 헐렁한 니트. 멋스럽죠. 아, 이때 워커는 접어서 신으면 더욱 예쁘고요. 만약 딱 한 켤레만 사야 한다면 라운드 오픈 토에 9~11㎝ 하이힐을 추천해요. 스키니, 정장 등 어디에 착장해도 여성스럽고 아름답게 연출 가능해요.”

이왕에 시작된 스타일링 조언에 체형별 구두 연출법까지 알려달라고 했다.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려면 바지색과 구두를 맞추라는 등 전에는 그런 공식 많았죠. 하지만 요즘엔 다들 자신있게 원하는대로 신어요. 정답은 ‘좋아하면 그냥 신는다’예요, 조금 싱겁나….”

<박동미 기자 @Michan0821>
/pdm@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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