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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개의 사원, 세계문화유산 ‘아유타야’ 를 가다
라이프| 2012-03-22 10:52
[태국 아유타야=박동미 기자] 축축한 땅에 스멀스멀 열기가 올라온다. 바람마저 습하다. 보수공사가 한창인 한 사원 앞에 섰다. 땀에 젖은 옷은 물론 마음까지 축 늘어지는 기분이다. 납골당의 유품은 모두 쓸려나갔다. 앙코르와트와 비슷한 양식으로 유명한 ‘왓 차이왓타나람’은 지난 아유타야 홍수 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곳 중 하나다. 강변에 바로 맞닿은 위치 때문이다. 2m 높이의 대웅전 터까지 물이 차 올랐다고 한다.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 계속된 홍수로 방콕은 물론, 태국 중부지역은 막대한 인명ㆍ재산 피해를 입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대 수도 아유타야는 통째로 물에 잠겼다. 이는 방콕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 강이 아유타야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흐르기 때문이다.

‘수마’의 흔적은 산재하지만, 홍수도 400년 역사의 숨결을 앗아가진 못했다. 지난 16일 말끔한 얼굴을 드러낸 ‘아유타야 왕국’을 방문했다. 17일부터 3일간 열린 ‘세계 무에타이 페스티벌’ 덕인지, 아직 ‘눅눅한’ 도시에 사람들이 붐볐다. 



#사원 1000개, 하루 9개씩 방문하라=태국은 인구의 90%가 불교도다. 아유타야에는 사원만 약 1000개다. 아유타야에 살면 모르겠지만, 잠시 방문한 곳에서 무엇부터 보아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걸어도 좋지만, 자전거나 툭툭(오토바이처럼 생긴 태국식 택시)을 타고 최대한 짧게 동선을 짠다. 이때, 강 아래와 강 건너에 있는 사원을 잘 구분해야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깊은 신앙심만큼이나 사원 방문을 즐기는 태국인들은 휴일을 이용해 하루 9개씩 둘러본다고 한다. 숫자 9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다. ‘왓 프라 씨 싼펫’ ‘왓 마하탓’ 등 주요 사원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원을 다 본다. 물론, 거의 평생에 걸쳐 이뤄지는 대장정이다. 방콕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으니, 고대 도시의 유산은 아유타야 시민들만의 특권도 아니다. 



방콕의 에메랄드 사원과 비견되는 ‘왓 프라 씨 싼펫’은 한때 아유타야에서 가장 큰 사원이었다. 3개의 높다란 탑 봉우리가 파란 하늘과 어우려져 그림 같은 풍광을 만들어낸다. 양 옆 모서리에서 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관광객이 많다. 높이 16m로 170㎏의 금을 입힌 입불상은 버마인들이 불을 질러 녹아 없어졌다.

14세기께에 세워진 ‘왓 마하 탓’ 역시 아유타야에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사원이다. 감상 포인트는 보리수 뿌리 사이에 감긴 불상의 얼굴이다. 마치 누가 번쩍 들어 꽂아놓은 것만 같다. 이리저리 사원에 나뒹굴다가 자연스럽게 박혔다고 하지만 사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다. 



‘왓 로까이 쑤타람’과 ‘왓 몽콘 보핏’은 가까이에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42m의 와불상이 있는 ‘왓 로까이 쑤타람’은 왕궁 뒤편으로 800m가량 떨어져 있다. 간혹 와불상 앞에서 관광객들이 그 모습을 흉내내듯 팔을 괴고 누워서 사진을 찍곤 하는데, 태국인들이 매우 불경스럽게 여기는 행동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1767년 버마에 의해 파괴됐다가 1956년 버마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복구된 ‘왓 몽콘 보핏’ 안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대형 청동 불상이 있다. 왼쪽 편으로 태국 전통 기념품과 의상 그리고 먹거리가 가득한 시장도 구경할 수 있다.

‘왓 차이왓타나람’은 1630년 앙코르와트를 모델로 프라쌋 왕이 어머니를 위해 세웠다고 한다. 홍수 피해로 아직 공사 중이라 내부 진입은 불가능하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과, 물을 말리기 위한 선풍기 등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야시장 둘러보고 선상 디너=아유타야는 1767년 버마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400년 넘게 태국에서 가장 번성했던 왕국이다. 지리적 이점 때문에 서양과의 접촉이 처음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한 포르투갈 탐험가가 ‘세계 무역의 중심지’라고 일컬었을 만큼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그 부귀와 영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만 남은 고요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이 옛 도시에도 화려한 밤이 찾아온다. 방콕이나 파타야에 비할 순 없지만, 외국 여행자들이나 관광객이 아닌 아유타야 사람들이 자주 가는 야시장 등을 둘러보고 짜오프라야 강에서 선상 디너를 즐길 수도 있다.

타논 나레쑤언 거리 동편에 위치한 재래시장 ‘딸랏 짜오 프롬’은 야채, 과일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필품을 팔고 있다. 시장 안쪽에 위치한 식당들은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 많아 똠얌꿍, 쏨땀 등 태국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짜오프라야 강의 선상 디너는 2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이때 강변을 따라 지어진 아유타야 고급주택과 사원들을 구경할 수 있다. 번쩍거리는 방콕의 선상 디너에 비하면 더없이 고요하고 조용한 분위기지만, 낚시하는 사람들과 개인 소유의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돼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주말 저녁에는 수많은 배들이 강을 따라 흐른다. 우리만큼이나 음주가무를 즐기는 태국 사람들은 배 위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저마다 한 곡조 뽑는다. 배가 스칠 때면 손을 흔들어 서로 인사를 한다. 거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찹쌀에 코코넛 밀크, 망고를 섞은 태국식 디저트를 먹는다. 단, 달려드는 모기떼와 날파리는 속수무책. 일찍 마음을 비우는 게 편하다.

<박동미 기자@Michan0821>/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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