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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아웅산 수치의 ‘모란이 피기까지’
뉴스종합| 2012-04-02 10:40
미얀마 ‘민주화의 꽃’ 아웅산 수치(66) 여사가 민주화 투신 이후 무려 24번째 맞는 봄에 ‘모란꽃’을 활짝 피우게됐다.

지난 1일 치러진 미얀마 보궐선거에서 야당인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끌며 수도 양곤의 빈민층 지역 카우무에 출마, 80%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인고의 세월’이었다. 수치 여사는 1988년 8월 8일, 독재정권에 맞서 대학생들이 일으킨 이른바 ‘8888항쟁’에서 군부의 총탄에 맞아 쓰러져 가는 민간인을 목격한 뒤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졌다.

‘고난의 행군’을 자처한 것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영웅’ 아웅산 장군의 막내딸이라는 ‘혈통’만으로도 편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다. 군부는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정치활동을 펴는 수치 여사를 1989년, 처음으로 집에 가뒀다. 


그럼에도 그가 이듬해 창당한 NLD는 총선에서 총 485석 가운데 392석을 얻는 대승을 거뒀다. 군부는 선거를 무효화하고 권력을 넘겨주지 않았다. 대신 수치 여사를 총 15년간 세 차례나 가택연금했다. 영국 옥스포드대 정치학과 재학시절 만나 결혼한 영국인 마이클 아리스 교수가 1999년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도 수치 여사는 남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부가 수치 여사의 영국 방문을 허용했지만, 한 번 마얀마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직감해 이에 응하지 않아서다.

수치 여사와 미얀마에 찾아온 봄은 미얀마 국민과 서방국가를 두루 들뜨게만들고 있다. 양곤시에 있는 NLD 선거본부 앞엔 수많은 군중이 모여 “우리는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꿈꿔왔다”며 NLD측 선거 캠페인송에 맞춰 춤을 췄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미얀마의 민주화 실험이 성공 단계에 접어듦에 따라 1990년 이후 미얀마에 가해왔던 각종 제재조치를 확 거둘 것을 저울질하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도 수치 여사의 승리는 미얀마 내부 개혁의 시금석으로 평가된다. 그가 이끄는 NLD는 총 45석이 걸린 이번 보궐선거에서 최소한 41석, 최대로는 전 지역구 승리가 점쳐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일(현지시간) “야당이 주장하는 44석 혹은 전승 예상은 집권당 측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NLD의 압승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번 선거의 공식 결과는 일주일 뒤께 나온다고 AFP 등 외신은 전했다.

수치 여사와 미얀마의 앞 날에 걸림돌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우선 수치 여사의 건강이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려스럽다. 개혁을 주도 중인 현 테인 세인 대통령의 몸 상태도 문제다. 수치 여사는 지난달 25일 과로 탓에 유세 일정을 취소한 적이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살인적인 지원유세를 펼친 탓이다. 최근 몇 달새 두 번이나 병상에 의지했다.

수치 여사와 동갑내기이자, 개혁안 입법을 위해선 수치 여사와 손을 잡아야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세인 대통령은 심장병 치료를 위해 최근 싱가포르를 다녀오기도 했다. 영국 유력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세인 대통령과 수치 여사의 건강이 혹시 잘못되면 개혁조치를 수행할 충분한 모멘텀이 유지될지 불분명하다”며 “군부의 보수세력이 시간을 되돌리려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이번 선거에서 미얀마 북부의 보석 광산도시 카친에선 막대한 부를 군부와 그 친족들이 장악하며 공정 선거를 방해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이는 제도권 정치판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수치 여사에게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잠재워 국민적 통합의 단계로 미얀마를 이끌 과제가 될 전망이다.

<홍성원 기자@sw927>
/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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