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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 10억 상환, 그래도 빚더미 그녀 사연은?
뉴스종합| 2012-04-26 09:25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이자 내느라 집까지 저당잡히고 다음달에 사글세로 들어갑니다.”

박영신(가명ㆍ46ㆍ여)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 ‘잘 나가가던’ 직장인 박 씨는 2006년 매월 맞춰야 하는 수금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인으로부터 사채업자 A씨를 소개받아 500만 원을 빌렸다. 이자 50만 원은 떼고 450만 원을 손에 쥐었다. 그게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루만 늦게 갚아도 금리는 두 배로 뛰었다. 이자를 갚기 위해 사채를 끌어다쓰는 악순환이 시작됐다.그러는 동안 박 씨는 A씨로부터 또 다른 사채업자 B씨를 소개받고 돈을 빌렸다. 5년 간 죽기살기로 A씨에게 이자만 10억을 갚았다.

그런데 A씨는 ‘아직 4억이 남았다’며 버티고 있다.

B씨에게는 원리금을 합친 것보다 2억을 더 줬다. 박 씨는 “사채업자 두 명에게 얼마를 되받아야 하는지 계산조차 안 된다. 최소 10억은 될텐데...”라며 답답해 했다.


집 안에서 네 살 된 딸이 보는데도 멱살을 잡히는 등 몇 달간 괴롭힘에 시달리던 박 씨는 최근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이하 신고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현재 해당 사채업자와 고소 건이 걸려있는 등 이미 경찰에서 접수한 상태이니 여기에 신고해도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등록된 업체가 아닌 ‘무등록 업자’에게 뜯기다 보니 쉽게 ‘바꿔드림론’ 등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박 씨는 무료로 사채피해관련 법률지원 및 구제를 맡아주는 한 시민단체를 찾았다.

현재 박씨는 이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맞고소를 결심했다. 그에게 적어도 희망을 준 건 정부가 아니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이하 민생연대)’라는 작은 모임이었다.

정부의 ‘불법사금융과의 전쟁’이 시작된지 1주일이 지났지만 시민단체들은 정부 정책의 실효성이 의심된다며 대부업 규제와 관련한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 신고센터가 지난 24일까지 집계한 실제 피해신고 건수(일반상담 제외)는 2673 건으로 평소의 4배가 넘는다. 피해액은 70억 가량이다. 1인 평균 260만 원 정도다.

이에 반해 시민단체를 찾는 피해자들은 일평균 15명이 채 안된다. 그런데도 피해액은 한 사람당 대부분 1억원이 넘는다. 피해자들의 사례도 도무지 실마리가 안 잡히는 악성채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 씨도 여러 명의 사채업자로부터 ‘추산조차 안 되는’ 규모의 대출사기를 당한 케이스다.

민생연대 측은 2008년부터 이런 악성 사채의 부담과 채권자들의 협박에 못이겨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무료 법률상담 및 서류작성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 지난 4년 간 이렇게 처리한 것만 2만 건이 넘는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구조적인 문제를 고치지 않은 채 피상적으로 일회성 단속에 집중했다간 사후약방문으로 끝날 것”이라며 “간단한 서류등록만 마치면 빚쟁이들도 돈놀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현행 대부업 등록제를 인ㆍ허가제로 바꾸는 등 시스템 개선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가 피해자 구제를 위해 실시하는 바꿔드림론 같은 서비스도 “오히려 악덕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들의 배만 불릴 수 있다”고 송 처장은 평가했다. 채무자의 빚을 저금리로 전환해 주면서 그들이 갚지 못한 원리금을 아무런 제약이나 단속 없이 채권자들에게 대신 갚아주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또 송 처장은 등록된 대부업자들에게 채무자 요청에 따른 채무확인서 발행을 의무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현행 법 체계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그는 “현재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2조와 5조는 채무확인서 교부의무를 무등록 업자들에게로만 한정하고 있다”며 “등록된 대부업자들은 채권 추심과정에서 채무자에게 어떤 정보제공도 없이 추심행위가 가능하다는 뜻” 이라고 설명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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