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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찍히는 인생
뉴스종합| 2012-05-02 11:22
엘리베이터·거리·주차장 온통 CCTV에 포위된 삶
범죄예방 등 긍정효과 불구 사생활 침해 역기능도


어디를 가도 CC(Closed Circuitㆍ폐쇄회로) TV다.

직장인 A씨. 아침 출근길을 보자. 잠에서 깨 씻고 아침밥을 먹고 난 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탄다. 보통 왼쪽 구석에 CCTV다. 지하주차장. 구석에 또 CCTV다. 곳곳에 CCTV가 달려 있다.

차에 올라탄다. 또 CCTV, 차량용 블랙박스다. 차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을 나선다. CCTV가 지켜본다. 그 영상은 아파트 경비실로 전송돼 일정 시간 저장된다. 도로로 나온 A씨의 차량. 방범용 CCTV가 A씨의 차량을 찍고 있다. 운전 중에도 도로 곳곳에 설치돼 있는 CCTV가 있다. 속도나 신호 위반을 단속하기 위한 카메라도 CCTV의 일종이다. 찍히고 또 찍힌다.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회사. 지하 주차장을 들어갈 때, CCTV다. 똑같다. 엘리베이터에서도 CCTV, 에스컬레이터에서도 CCTV, 사무실 복도에서도 CCTV다.

사무실 곳곳에는 CCTV가 설치돼 A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점심 시간. 밥도 맘 편하게 먹을 수 없다. 밥 먹을 때도 CCTV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직장인 A씨의 하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CCTV’다.

그러나 CCTV는 조용하다. 특별히 A씨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CCTV는 그저 CCTV일 뿐이다. A씨에게 딴지를 걸지 않는다. 다만 A씨에게 범의(犯意)가 있고, 용의선상에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CCTV는 A씨를 옥죄기 시작한다. A씨에게는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수단이 CCTV지만, A씨를 붙잡아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 CCTV는 최고의 효자다.

최근 경찰에 검거되는 각종 범인들은 이렇게 CCTV 때문에 붙잡힌다. CCTV를 통해 특정 피의자가 피고로 바뀐다. 소위 빼도 박도 못한다. CCTV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다.

다만 CCTV의 화질이 문제다. 멀리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CCTV도 누구인지 정확히 장담을 못한다. 그저 키가 크다 작다, 피부색이 어떻다, 남자다 여자다, 옷 색깔이 뭐다 정도밖에 분간할 수 없다.

대부분 설치돼 있는 CCTV가 그렇다.

상황이 이런 탓에 아파트 지하나 1층 CCTV는 고(高) 화소 CCTV를 설치한다. 타고 내릴 때만 정확히 누구인지 식별하면 된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중요치 않다. 지하나 1층에서 탄 특정인만 알아보면, 12층이건 20층이건 범죄가 일어났다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

김성훈, 윤현종, 정진영, 김현경, 서지혜, 이지웅, 원호연, 서상범, 민상식 등 모두 9명의 헤럴드경제신문 수습기자들이 서울 경기권 일대 곳곳에 숨어 있는 CCTV를 찍었다. 여기도, 저기도… 구석구석에 CCTV가 있다. 수백장을 찍었다. 그래도 수천, 수만장을 더 찍을 수 있다. CCTV가
없는 곳이 없다. 범죄를 막을 수 있어 좋지만, 당신의 사생활이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 아쉽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CCTV는 27만화소짜리다. 27만 화소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무늬만 CCTV지 그냥 겁만 주는 ‘공갈’ CCTV에 불과하다. 한 단계 좋은 CCTV는 41만화소다. 41만화소는 남자구나 여자구나, 서양인인가 동양인인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CCTV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최근에는 메가(M) 화소 CCTV가 속속 설치되고 있다. 1.3M, 2M CCTV까지 설치되고 있다. 소위 130만화소, 200만화소라는 말이다.

일례로 국내 카지노에는 41만 화소급 CCTV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41만 화소라도 같은 41만이 아니다. 카지노에 설치돼 있는 CCTV는 렌즈가 줌업(Zoom up)된다. 41만 화소급의 챔피언이다. 좀 더 특정화시킬 수 있고, 카지노 게임판에서 이상한 짓(?)을 적발해 낼 수도 있다. 2m라면 “옆집 홍길동 아빠가 저기 가네”라고 특정화시킬 수 있다.

전국적으로 CCTV가 몇 대나 설치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례로 서울시는 지하철 내 범죄 예방을 위해 2호선 일부 열차와 7호선 모든 열차에 CCTV 1704대를 설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 17일 수원 20대 여성 토막살인 사건 이후 도내 곳곳에 차량용 CCTV 158대를 설치했다.

고성능 CCTV라 차량번호판까지 인식할 수 있다. 현재 경기도 내 범용 CCTV는 모두 7511곳, 1만4700대가 설치돼 있다. 경기도에서 CCTV를 활용해 범인을 검거한 사건은 2009년 457건에서 2010년 776건, 2011년 1577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초동수사에서 경찰은 맨 먼저 CCTV 영상 확보에 나선다. 서울 성북동 초등학생 납치 사건은 수백개의 CCTV 동영상을 기초 자료로 해 범인을 특정화한 뒤 검거한 좋은 사례다. 또 지난 24일 부산에서 검거된 뺑소니범 역시 경찰이 며칠에 걸쳐 부산 일대 250여개의 CCTV 영상을 꼼꼼히 돌려보며 차량을 특정했고, 결국 유력 용의자 A씨를 붙잡을 수 있었다.

수천~수백만개의 CCTV는 얼기설기 얽혀있다. 시간대별로 이 CCTV 영상이 범인의 이동경로를 확인해 주고, 최종적으로 어디 머물러 있다는 것까지 알려준다.

CCTV가 많이 설치되면 될수록 경찰이 설 수 있는 입지는 좁아진다. 경찰 이상의 훌륭한 방범 역할을 CCTV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CCTV 때문에 살기 좋은 세상이 돼 범죄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CCTV 때문에 무서운 세상이 됐다.

당신의 사(私)생활은 사(死)생활이 돼가고 있다는 얘기다. CCTV의 딜레마다.

박병국ㆍ서상범ㆍ민상식 기자/cook@he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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